▲ 밀성군 묘역
하남지역은 지리적·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야산과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 흐르는 한강에는 망월천·덕풍천
·산곡천 등 샛강의 물이 흘러 들며 풍부한 양의 생명수를 제공, 그 옆으
형성된 평야를 기름지게 했다.

경기도의 중심부에 자리한 하남은 동쪽으로 광주시 남종면과 남양주시 조안
면, 서쪽으로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 남쪽으로 광주시 중부면과 성남시, 북
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남양주시와 인접하고 있다.

또한 남쪽에는 남한산성이 자리잡고 있는 전원풍 도시로 이런 지형의 하남
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에 좋았으며 일찍부터 신문화를 받아들여 보
다 우수한 문화를 만들며 크고 작은 많은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향토유적 제3호인 하남시 상산곡동 100의2 사충서원 묘정비는 조선조 경종
때 영의정 김창집등 4명의 신하가 숙종의 셋째 왕자인 연잉군을 세자로 책
봉하는데 앞장서다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신임사화 희생자의 명예회복
을 위해 1786년(정조10)에 건립한 서원과 비다.

당시 노량진에 세워진 이 서원은 고종·순종에 이르기까지 제사를 지내왔으
며 중건한지 172년이 지난 1927년 이곳이 철도용지로 수용, 다시 용산으로
옮겨졌으나 6·25때 소실되면서 1968년 현재의 하남시로 다시 옮겨왔다.

서원건물은 다시 지어 옛모습은 없으나 그 앞에 있는 묘정비는 그대로 전해
져 오고 있다.

올림픽대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교차하는 하일인터체인지에서 미사
리 조정경기장 쪽으로 1.4㎞쯤 가면 삼거리에 향토유적 4호인 구산성지(망
월동 387의12)가 자리해 있다.

뒷산이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고해 불리는 구산마을은 103인의 성인중 71
번째 성인 김우집(김성우 안토니오)을 비롯, 9명의 박해시대 순교자 묘역
이 있는 유서깊은 사적지로 하남을 대표하고 있다.

구산성지 사적지의 담장을 돌아 들어서면 고 김세중화백이 조각한 성모자상
이 있고 이곳을 지나 또 다른문을 열면 그 안에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
의 묘소와 현양비가 세워져 있다.

1795년(정조19)에 태어난 성 김성우 안토니오는 중국인 유방제신부와 함께
구산으로 와 마을의 문중 사람들을 교화시키면서 회장직을 수행했다. 구산
마을 최초의 순교자인 그는 47세에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굳은 신앙심으로
1925년 로마교황청으로 부터 '한국 79복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올랐다.

초이동에 있는 향토유적 2호인 밀성군 묘역및 선도비는 세종의 12번째 아들
이며 5번째 서자인 이침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침은 타고난 성품이 현명하고 민첩해 역대 임금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현
인으로 통하는 인물로 1442년(세종24)에 밀성군에 봉해졌다.

세조는 우애가 돈독함을 가상하게 여겨 그에게 금병을 맡겼으며 1462년(세
조8년) 모친상을 당하자 홀로 여막에서 예를 다한 인물이다. 또한 세조가
죽자 묏자리를 보는데 깊이 관여했고 아버지인 세종대왕의 능을 여주로 옮
길때 도제조가 되어 일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478년(성종9) 50세로 생을 마친 밀성군은 초이동에 봉안돼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서거정이 쓴 것으로 알려진 선도비가 묘역내에 우뚝 서있다.

석탑·우물·사찰 등에도 다채로운 전설이 서려 있어 역사적 가치를 더해
주고 있다.

하남시 춘궁동 3층·5층석탑은 여자의 숭고한 우애가 담겨 있는 석탑이다.

백제 근초고왕때 법화골에 예선과 갑분이라는 두 처녀가 살았다. 둘은 우애
가 너무 깊어 먼저 시집간 예선이 갑분을 불러 함께 살며 농사꾼인 남편을
공부시켜 벼슬길에 오르게 해 뒷날 마을사람들이 이들의 우애를 귀감으로
삼고자 마을에 석탑 두개를 나란히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감북동 황새우물은 남한산에 살던 황새들이 부리로 쪼아서 만들었다고 전해
진다. 우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이 신비해 동네주민들이 우물의 물
을 마시면 힘센 장사가 되었다고 한다.

하남시 배알미동 용담사는 1418년(태종18) 세종이 이변이 생겨 이곳으로 피
신하게 되었다. 이때 갑자기 용담사 입구에 있던 소나무의 가지가 늘어져
몸을 덮어 줘 피신할수 있었고 이 절의 약수를 먹고 피부병·위장병등 속병
이 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절에서 불공을 들여 세자를 얻는 등 세번의 은
혜를 입었다는 얘기가 전해 오고 있다. <하남>

◆ 교산동 '광주향교'는

향교는 지방의 유일한 관학으로 조선초에는 지방교육의 중심이었다.

초급의 교육기관으로 서당이, 그리고 고등과정인 중앙의 성균관이 있어 향
교는 중등교육기관의 성격을 갖고 있다.

하남시 교산동에 있는 광주향교의 창건연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수 없
다. 다만 광주군지에는 1846년 간행된 홍경모의 '중정남한지'를 인용해
“본래 고읍서쪽 2리에 있었는데 1703년(숙종29) 광주부윤 이제가 고읍터
로 이전하였으며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