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평향교 전경.
한반도의 한복판에 자리잡은 가평군은 옛 조상의 발자취가 그대로 살아 숨쉬는 유서깊은 고장이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 그리고 맑은 물로 경기도내 대표적인 휴양지인 가평의 지명은 신라때 지어졌다. 경덕왕 16년(757년) 아름답고 평화로운 고을이라 해 가평(嘉平)이라 명명했다. 이후 1018년(고려 현종 9년) 인구가 감소하면서 가평을 강원도 춘천부에 예속시켰으며 1397년(조선 태조 6년)에는 가평향교를 설치, 유생들을 배출했다.

조선조 태종때 경기도로 이관된 이후 1507년에는 중종의 어태가 봉안된 곳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하는 등 춘천부·양주목·포천군의 편입과 분리를 되풀이하다 고종 35년 포천군에서 가평군으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1599년 명필로 유명한 한호 석봉이 가평군수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어 이때부터 이름있는 학자들이 가평을 찾아와 학문에 전념하는 풍토가 조성됐다고 한다.

학자와 학문의 고장인 가평군에는 조상의 얼이 깃들어 있는 많은 향토유적이 있다.

향토유적 제1호인 현등사(하면 하판리)내 화담당 경화탑은 화담 박경화(1786~1848)의 부도탑으로 서기 1848년에 세웠다.

부도탑의 주인공인 화담당은 1803년에 화양사에 들어가 스님이 되고 지탁대사의 법을 이어받은 후 강원도 보개산 석대암에서 화엄경·열반경 등을 연구했다. 이후 전국 각지의 사찰을 순회하며 67품의 계송을 펴다가 현등사에서 수도에 전념했다.

이 탑에는 도광무신시월일입(道光戊申十月日立)이란 연대가 있어 조선시대 부도탑임을 알 수 있다.

향토소유적 2호인 가평향교는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창설돼 대성전과 동무·서무·내삼문·명륜당을 건축하고 중앙에 문선왕인 공자를 비롯 안자·증자·자사·맹자등 다섯 성현의 위패를 봉안했다.

동종향으로는 송준기·김집·김장생·이이·이황·조광조·김광필·안유·설총·정호등 10인의 현인을 모셨으며 서종향에는 주희·최치원·정몽주·정여창·이언유·김인후·성흔·조헌·송시열·박세변 등의 위패를 봉안,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첫번째 정일이 드는 날)에 춘추석존제를 봉행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가평향교는 가평군청 오른편 중촌부락에 있었으나 매년 향사때마다 호환이 일어나 현재의 터로 이전했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본향교는 병자호란 당시에 대성전 일부가 소실돼 다시 개축했는데 1950년 6·25동란때 대성전이 소실돼 수복후 구 남면사무소 건물을 헐어다 신축했으며 본시 이 건물은 가평읍 향교리 송내인의 사랑채였다고 한다.

설악면 선촌리 70 장돌부락에 위치한 향토유적 3호인 경현단은 조선시대의 이름높은 12 유현(儒賢)을 모신 제단으로서 원래 조선 현종 2년에 창건된 미원서원이 있었던 자리다.

이 서원은 순종 25년에 사액을 받아 지방 유림의 교육장소로 사용돼오다 고종 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폐원된 것을 가평군내 유림들의 주선으로 그 자리에 단을 설치하고 돌로 만든 신주를 12개 세워놓았다.

신주는 몸돌과 댓돌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몸돌은 높이 41.5㎝, 폭 27.5㎝, 두께 9.5㎝의 검은 돌로 만들었으며 댓돌은 가로·세로 36㎝, 높이 18㎝의 화강암으로 조성했다.

북면 적목리 논남부락에는 향토유적 5호로 지정된 강영천 효자문이 있다.

강영천은 조선조 숙종시절 3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중 7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눕게 됐다.

모친의 병이 악화돼 정신을 잃을 지경에 이르자 자신의 손가락 피를 내어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은 뒤 정신을 잃었다. 의식을 되찾은 어머니는 쓰러져 있는 아들을 정성껏 간호하니 아들도 깨어나게 됐고 그뒤 두 모자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후 강영천의 효행을 전해들은 조선 숙종(1700년 3월15일)이 효자정문을 하사한 것이다.

향토유적 6호인 중종대왕 태봉은 조선 11대 중종대왕의 태를 봉한 것으로 당초에는 상면 태봉리에 안치됐다가 현 가평읍 상색리로 이전한 것이다. 일제때 고양시 원당 서3릉 옆으로 태함만 이장하고 도굴 파손돼 석조 일부가 노상에 방치됐던 것을 1987년 복원했는데 태함은 지상에 노출시켜 그 원형을 관찰할 수 있으며 태봉의 규모나 형태를 학습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 현등사

가평의 사찰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찰인 현등사(향토유적 제5호).

하면 하판리에 위치한 현등사는 1450여년전 신라 법흥왕 당시 인도에서 마라아미라는 스님하나가 신라에 불교를 전하기위해 찾아 왔는데 그의 불심이 지극함에 감복한 왕이 그를 위해 창사케 했다.

그후 수백년간이나 폐허로 내려오다 고려 21대 희종당시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 석등을 발견하고 재건하였으나 또다시 폐사직전에 놓였던 것을 조선 순조 29년(1829년)에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등사는 양주 봉선사의 말사(末寺)로 극락전·보광전이 있으며 극락전의 아미타불은 조선 영조 35년(1759년)에 주조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