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지명이 유래된 안양은 현재 인구 60만의 수도권 중핵도시로 선조들의 혜안과 지혜가 돋보이는 곳이다.
지난 73년 시로 승격한 안양시는 이렇다할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보물 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당간지주를 비롯 도유형문화재인 석수동 마애종, 삼막사 3층 석탑, 안양사 귀부와 박서 신도비, 삼막사 삼귀자 등 선조들의 혼과 넋이 깃들어 있는 중요한 향토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안양시의 문화는 지명 유래에서 보듯이 불교문화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문헌상에 최초로 등장하는 안양의 역사는 고구려 때 율목군에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원삼국시대와 선사시대에 관한 기록은 없는 실정이다. 다만 최근 평촌신도시 개발과 함께 석기시대의 각종 유물과 청동기시대의 지석묘가 발견되어 이 지역이 오래된 주거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제 근초고왕때 백제 영토가 되었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고구려 남쪽 영토가 된 안양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정조대왕의 만안교 축조와 능행로가 만들어져 행정발전과 함께 선조들의 각종 문화를 꽃 피우고 있다.
아직은 시향토문화재로 지정은 되지 않았지만 안양지역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박서 신도비
신도비는 종2품 이상 관리를 지낸 사람의 묘 아래 길가에 세우는 석비다. 박서(1602~1653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황해도 관찰사 병조참판, 공조와 병조의 판서를 지냈다.
이 비는 광명시와 경계를 이루는 만안구 박달2동 환경사업소 입구 은기목장내에 위치해 있으며 박서의 묘는 신도비로부터 북쪽으로 20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해 있다. 총고는 3.82m이며 1665년에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다.
#안양사 부도(安養寺 浮屠)
탑신과 기단 중석은 없으나 하대석(下臺石)은 높은 2단의 8각 지대석(地臺石) 복연(複蓮)으로 장식됐으며 상대석(上臺石)은 앙연(仰蓮)이 조각됐다.
옥개석(屋蓋石)은 팔각3단의 옥개 받침위에 있고 처마의 상·하선이 전각(轉角)부분에서 반전하며 높이는 1.36m 너비 1.35m다.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도는 고대 인도의 범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부처·불신을 뜻하며 불가에선 스님 열반후 사리나 유골을 모시는 곳으로 활용하고 있다.
#삼막사 삼귀자(三幕寺 三龜子)
조선후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池雲英 1852~1935년)이 이곳 백련암지에 은거할 당시에 쓴 글로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거북귀자를 새겨 놓았다.
삼귀자 좌측엔 '불기 2947년 경신중앙 불제자 지운영 경서'라고 쓰여져 있으며 우측에는 '관음몽수장수영자'가 새겨져 있어 지운영이 꿈에 관음보살을 보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삼막사 남녀근석(三幕寺 南女根石·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
이 돌은 삼막사 칠성각 옆에 있는 자연형태의 남근석(南根石)과 여근석(女根石)으로 자식 낳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 돌을 만지면서 빌면 자식을 얻는 동시에 일가(一家)가 번영하고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4월 초파일과 칠월칠석 등에는 현재도 전국 각지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촛불과 삼색과일 등을 차려 놓고 정성을 드리고 있으며 남근의 높이는 1.5m 여근은 1.1m다.
#석수동 석실분(石水洞 石室墳)
만안구 석수1동 산 53의3 석수동 석실분은 삼성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뻗어내려온 구릉(丘陵)의 정상부에 화강암으로 축조됐다. 삼국시대의 것으로 해발 300m 정도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분은 산의 정상부를 향해 남북으로 축조되어 있다.
석실 내부는 화강암의 할석(割石)을 이용해 동·서·북벽(北壁)의 면을 맞추어 축조하였고 남벽(南壁)은 대판석(大板石) 1매로 축조하였다.
동·서벽은 5~6단으로 쌓여 있고 북벽은 크고 작은 돌을 6~7단으로 쌓았으며 석실내부의 길이는 3.3m 폭 1.4m 높이 1.5m다.
석실의 뚜껑은 3매의 판석(板石)을 사용하였으며 커다란 화강암이다. 그 중 가운데의 덮개석이 안으로 도괴(倒壞)되었고 외부는 흙으로 보강된 점으로 보아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에 남벽을 이용해 추가장(追加葬)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초기 횡혈식석실분으로 연도가 생기기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막사 명부전(三幕寺 冥府殿·문화재 자료 제60호)
통일신라 시대의 고승인 원효·의상·윤필거사 등 세 성인이 현재의 삼막사가 위치해 있는 삼성산에서 각각 1개의 막(幕)을 짓고 살면서 3개의 막이 형성된데서 비롯됐다는 삼막사의 명부전은 조선 고종 17년(1880년) 건립되었으며 1975년 중수되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위시하여 명부(冥府)의 10대왕(大王)을 모신 곳이며 명부의 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왕전(冥王殿)이라고도 한다.
◆ 비상동 도요지
동안구 비산동 산3의 서울농대 수목원내에 위치한 비산동 도요지는 관악산(冠岳山) 일대에 형성되었던
[시·군지정 문화재 - 안양] 선조의 손길닿아 활짝 핀 불교문화
입력 2002-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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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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