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역사의 양주땅에는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으며 군지정 향토유적만 13개소에 달한다. 특히 양주군 향토유적 1호로 지정돼 지난 80년부터 84년까지 5차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뤄진 양주대모산성(楊州大母山城)은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매초성'의 한 부분으로 추정되는 등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93년 도 기념물 143호로 지정됐다.
●남을진 선생묘 및 신도비
향토유적 2호인 남을진(南乙珍) 선생묘 및 신도비는 은현면 봉암리 24에 위치해 있다.
고려말 충신인 남을진 선생은 공양왕때 참지문하부사를 지냈고 성품이 강직, 간결해 조선 개국이후 벼슬을 버리고 사천에 은거했다. 충절에 감복한 태조가 사천백에 봉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감악산 깊숙이 들어가 사람을 일절 만나지 않았으며 사후 그가 거처한 곳을 남선굴이라 불렀다. 영조 때 사천서원에 제향됐다.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묘비 2기, 문인석 2개 등 석물이 있으며 봉분의 높이는 2m, 둘레는 19m, 직경은 7m다. 묘소 아래 위치한 신도비는 팔각지붕형의 옥개와 장방형의 비좌를 갖추고 있다.
●정민시 선생묘 및 신도비
향토유적 3호는 양주읍 산북리 산 92에 위치한 정민시(鄭民始) 선생묘 및 신도비다. 정민시 선생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왕의 보필에 힘써 문물의 개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묘는 정경부인 완산 이씨와의 합장묘로서 봉분의 크기는 직경 550㎝ 높이 155㎝며 묘역이 있는 구릉 하단부에는 사후 정조가 친히 '정와정공민시지장'이란 어필과 전교를 내려 건립한 비석이 있다.
●정렴 선생묘
향토유적 4호인 정렴 선생묘는 양주읍 산북리 산 92에 자리해 있다. 정렴 선생은 조선 전기의 선비이자 의학자로 천문·지리·의서·복서에 두루 능통했으며 특히 약의 이치에 밝아 1544년 왕을 입진하기도 했다. 묘는 후손 정민시의 묘 맞은편 구릉에 위치하고 있으며 제일 상부에 부생제 온양 정순붕과 정경부인 완산 가씨의 합장묘가, 아래에는 후손인 정광겸과 정부인의 합장묘가 있다.
●이해수 선생묘
향토유적 5호인 이해수(李海壽) 선생묘는 남면 한산리 산1에 위치해 있다. 명종 18년(1563년) 문과에 급제해 호조참의·대사간 등을 거쳐 선조 15년에 도승지가 되었다. 한때 당파에 몰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임진왜란때 석방돼 왕을 의주로 호송해 대사간이 되었고 그후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다.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망주석 2기가 있고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묘비에는 전쟁때의 탄흔이 남아 있다.
●최제·최혁 효자정문
향토유적 7호는 광적면 우고리 232 소재 최제·최혁 효자정문이다. 조선 후기 이 마을 출신의 효자 최제와 그 후손 최혁 두 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문이다. 효자정문은 정면 5.15m 측면 2.35m의 맞배지붕에 방풍판이 달린 건물이며 1930년 말 낡은 부분을 보수했다.
●송질 선생묘 및 신도비
향토유적 8호는 송질 선생묘 및 신도비로 은현면 선암리 산15의1에 자리해 있다. 송질 선생은 성종때 벼슬길에 올라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우찬성, 이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1506년 중종반정때 정국공신 3등에 책록되는 한편 여원부원군으로 봉해졌다. 묘는 중종 15년에 건립됐으며 석물로는 묘갈, 상석, 향로석과 한쌍의 동자석, 망주석을 갖추고 있다.
▲윤자운 선생묘 및 신도비
향토유적 9호는 백석읍 홍죽리 산27 소재 윤자운(尹子雲) 선생묘 및 신도비다.
조선 전기 문신인 윤자운 선생은 세종 26년(1444년) 식년 문과에 급제해 집현전 부수찬과 도승지 등을 역임했으며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성종 1년 영의정에 오르고 이듬해 무송부원군에 봉해졌다.
묘소 주위에는 화강암 석축에 한식기와를 올린 곡원이 둘러져 있으며 봉분의 높이는 1.9m 직경 6.4m 둘레 18m다. 비문은 심한 마멸로 판독이 어려워 우측에 이수와 귀부를 갖춘 새로운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남희 선생묘
향토유적 10호는 은현면 도하리 산16 소재 남희 선생묘이다. 남희 선생은 세종때의 충신으로 병조참판을 지냈으며 나라에 공을 세워 의평군에 봉해지고 절충장군의 칭호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묘는 숙부인 연일정씨와 합장묘이며 비석 뒷면의 음각으로 미뤄 이 비는 성종13년(1482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홍지 선생묘
향토유적 11호인 홍지 선생묘는 남면 상수리 산15에 위치해 있다.
홍지는 고려말 충신으로 조선 개국이후 숨어서 지냈으며 태조가 사재직장의 벼슬을 내렸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묘역에는 신·구묘비 2기와 상석, 향로석, 망주석이 있으며 묘 앞에는 정부인 개성왕씨의 묘가 있다.
▲조영무 별묘
향토유적 12호인 조영무 별묘는 백석읍 연곡리 산28의1에 있다.
조선개국 공신이며 제2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태종의 극진한 총애를 받았다.
본래 이 별묘는 고종 5년(1868년) 현재의 위치에서 150m 정도 떨어진 서북쪽 지점에 위치했으나 퇴락이 심해 1914년 이곳
[시·군지정 문화재 - 양주] 고고한 600星霜… 가는곳마다 선열숨결
입력 2002-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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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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