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지명 유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군포는 신라 경덕왕때 율진군에 속했다가 고려 태조 23년 과주(果州)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과천현(果川縣) 남면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현재 인구 27만명의 중소자족도시로 선조들의 혜안과 지혜가 돋보이는 곳이다.
지난 89년 1월1일 시흥군 군포읍에서 시로 승격한 군포시는 급속한 공업화와 더불어 신도시 개발로 많은 문화유적이 파괴돼 이렇다할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국가 사적지로 지정된 조선백자 도요지를 비롯 정난종선생의 묘와 신도비, 광정리 지석묘, 전주이씨 안양군 묘, 삼성사, 방자유기장 등 선조들의 혼과 넋이 깃들어 있는 중요한 향토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군포시의 문화는 비록 수적으로는 얼마되지 않고 빈약하지만 현존하거나 혹은 발굴조사된 문화유적들을 볼 때 군포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살아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도 수리산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는 각종 유물이 선사시대 것으로 판명되고 있으며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과 유물도 함께 발견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에 기반을 둔 성씨 집단이 동족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많은 사대부 가문에서 이곳에 묘역(墓域)을 만들어 부와 권세의 상징으로 삼아 오기도 했다.
▲이기조묘와 신도비
조선 인조대의 문신이었던 이기조(李基祚)의 묘와 신도비가 산본동 1152의11에 위치해 있다. 묘역은 120여평이며 봉분을 중심으로 정면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 있고 한 단 아래의 좌우에 동자석·망주석·문인석 한쌍이 설치돼 있다.
묘소에는 묘비가 없는 대신 동자석이 있는 것이 특징이며 신도비는 묘에서 동쪽으로 30m 떨어진 지점에 자리해 있다.
이 비석은 1단의 기단석 위에 오석(烏石)으로 된 비신(碑身)을 세우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옥개석을 얹었다.
기단석의 크기는 가로 155㎝, 세로 101㎝, 높이 48㎝로 윗 부분의 모서리는 반듯하게 깎아 만들었으며 비신은 높이 230㎝, 폭 92㎝, 두께 30㎝다.
신도비의 비문은 숙종때 좌의정을 지내고 예학에 밝은 박세채(朴世采)가 지었고 손자 이명필(李明弼)이 썼으며 숙종 31년 영의정을 지내고 평천군에 봉해진 신완(申琓)이 전액(篆額)을 썼다. 이기조의 묘는 원래 장단에 있었으나 지난 1672년 이곳으로 이장해 부인 신씨와 합장했다.
▲안양군묘
조선 성종의 셋째 아들 안양군(安陽君) 이행(李●)의 묘로 규모는 300여평이며 연지와 사당등이 있다. 묘역에는 상석·향로석·묘표(墓表)가 각 1기씩 세워져 있고 동자석·석수(石獸)·망주석·문인석등의 석조물이 2기씩 조성돼 있으며 재질은 모두 화강암이다. 신도비는 후에 세웠는데 비문은 통정대부 신종묵이 지은 것을 1976년 이형이 쓰고 김충현이 전액을 했다.
안양군의 자는 성의, 호는 만송으로 연산군 10년 갑자사화 때 제천으로 안치된후 동생 봉안군(鳳安君)과 함께 사약을 받았다. 집안의 재산은 적몰됐으며 처는 견성군(甄城君)에게 사여됐다.
반정으로 중종이 즉위하면서 안양군의 생모인 정씨에게는 삼년제물이 내려지고 안양군과 봉안군이 복작돼 쌀·종이·정포등 각종 하사품이 내려짐과 동시에 관리를 파견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중종 15년(1520) 안양군 부인의 상소로 명당인 양주에 개장한 뒤 고종2년(1865) 지금의 광정동으로 이장했다. 시호는 공회(恭懷)다.
▲골안지석묘
골안지석묘는 당성사로 들어가는 산본2동 179 골안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개석(盖石)의 장축(長軸)이 남북 방향에서 서쪽으로 30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규모는 길이 205㎝, 너비 140㎝의 길쭉한 타원형으로 두께는 50㎝ 내외이며 석질은 화강암이다. 개석 하부 중앙과 남쪽부분에 소형의 활석들이 남아 있으나 대부분 계곡물에 의해 유실되고 가운데 부분 일부만 원래의 생토층이 남아 있다.
또 남쪽으로 4m정도 떨어진 곳에 길이 180㎝, 너비 85㎝, 두께 30~50㎝ 규모의 또 다른 지석묘 1기가 있으나 개석의 하부구조는 완전히 교란돼 있다.
▲정난종 묘역과 신도비
속달동 산 3에 위치한 이묘역은 경기지방에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묘역 가운데 비교적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조선 세조때의 명신인 정난종(鄭蘭宗)을 비롯 그의 맏아들 광보, 둘째 아들 광필, 그리고 광필의 넷째 아들 복겸과 6세손 주손·진원의 묘가 산등성 중턱에서 아래로 열을 지어 조성돼 있다.
묘역에는 묘에 대한 신도비와 혼유석·석등·동자석·문인석등이 규례대로 갖춰져 있어 조선 전기의 분묘사·석비·금석문등 고고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난종은 세종 15년(1433)에 태어나 성종 20년(1489)에 사망한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자는 국형, 호는 허백당(許白堂)이며 본관은 동래다. 초서와 예서가 뛰어나며 세조 11년(1465) '원각경(圓覺經)'을 인쇄하기 위해 주자체를 쓰도록 했는데 이 활자가 바로 유
[시·군지정 문화재 - 군포] 빈곤한 유적속 조상혜안 번뜩
입력 2002-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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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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