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계 보수파의 거목이었던 고(故) 김남수(1922~2002·전 천주교수원교구장) 주교의 흉상이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정에 세워진다.
천주교수원교구(교구장·최덕기 주교)는 고 김 주교의 선종 2주기를 맞아 1일 오후 2시 그가 설립한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추모미사와 함께 흉상 제막식, 유품·사진 전시회를 갖는다.
만주 간도 태생인 김 주교는 1948년 10월 덕원 수도원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같은해 12월 월남했다. 이후 서울대교구 혜화동본당을 거쳐 이탈리아에 유학, 로마 우르바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했다. 수원교구 2대 교구장에 피명된 것은 1974년. 이후 1997년까지 23년간 '하나되게 하소서'라는 모토로 교구를 이끌었다.
그가 재임한 시기 수원교구는 수도권 팽창과 사회 발전에 맞물려 급속도로 발전했다. 재임 초기 31개 본당에 6만7천여명에 불과하던 시골 교구는 재임 말기에는 100여개 본당에 신자수 40만명을 넘는 국내 2대 교구로 발전했다. 특히 미래를 예견하고 차근차근 준비해나간 그의 혜안은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1983년 수원가톨릭대학교를 설립, 사제 양성의 기반을 마련해 성소 증가에 따른 문제를 미리 해소했으며 일찍이 북방선교에 눈을 돌려 지난 94년에는 중국 길림교구와 자매결연, 인적 물적 교류의 물꼬를 텄다. 그는 북방선교에 대한 애착이 남달라 은퇴 이후에도 중국 선교에 열정을 불태웠다.
그가 '아이낳기 운동'을 벌이고 '낙태 금지'를 강조한 것은 유명하다. 저출산이 사회적 이슈가 된 요즘 그의 선견지명은 놀라움마저 준다.
김 주교는 강론 때 “아이가 적어도 셋은 돼야 신부 하나, 수녀 하나를 만들고 하나는 데리고 살 수 있다”면서 반 우스갯소리로 신자들에게 자녀 셋 이상 낳기를 권장했다. 은퇴 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 민족이 1억명은 돼야 세계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속내를 밝혀 민족애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런 만큼 낙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가톨릭 교리상 금지된 일이기도 하지만 김 주교는 이를 특히 강조해 진보적 여성계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최근 세계적 흐름인 생명존중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는 장안구 정자동에 교구청과 주교좌 성당을 신축해 교구의 위상을 새롭게 세웠다. 행사문의: (031)242-8081
오늘 故 김남수 주교 흉상 제막식
입력 2004-06-01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4-06-01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