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는 세계 천주교에서도 유례없는 역사를 갖고 있다. 외국 선교사의 본격적 선교가 시작되기 전 부국강병의 기대를 안고 서구 문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신앙이 자생해 200여년간 유례없는 순교와 수난 속에 토착화된 것이다.

한국 가톨릭 신앙 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오욕의 한국근대사의 죄과를 비껴가지 못한 천주교의 신앙유적지를 꼼꼼한 답사를 통해 되살린 '우리 신앙유산 역사기행'(도서출판 사람과사람 刊)이 최근 출간됐다.
 
한국일보·평화신문 기자를 지낸 언론인 이충우씨와 사진작가 전대식씨가 함께 작업한 이 책은 670쪽의 두툼한 분량 속에 신앙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다. 저자는 순교자들이 어떻게 죽음까지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신앙을 지켜냈는지, 스스로 갖게 된 의문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답사기를 벗어나 순교자의 신앙심과 영성을 찾아내는 정신적 답사에 더 애쓰고 있다.
 
책은 유명한 순례지인 미리내나 천진암, 명동성당을 제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충남의 여사울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고향인 솔뫼성지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교회사에서조차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는 여사울은 '내포지방 모교회' 사도인 이존창의 고향이다. 이존창으로 인해 김대건 신부와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의 집안이 입교한다.
 
이렇게 시작한 답사는 호남, 경기, 강원, 충청, 영남과 제주 등 국내를 비롯해 북한과 중국·필리핀 등 해외까지 100곳이 넘는 곳으로 어어진다. 긴 여정에서 저자는 성인품에 오른 순교자의 발자취뿐 아니라 성인품에 오르지 않은 순교자들의 삶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무려 1만명이 넘는 순교자 가운데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무명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천주교가 외래 종교이긴 하지만 그것을 믿었던 사람들의 심성과 정서는 어디까지나 이 땅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삶과 정서를 엮어낸 문화적 토양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신앙의 토착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편협한 사고라는 것이다.
 
특히 일제시대 교회를 이끈 지도자들의 행적에 대해서도 호교론적 태도를 탈피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1866년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에 대해 “가톨릭대사전은 프랑스함대의 민가 약탈에 대해서는 기록하고 있지만, 문수산성에서 패하자 민가와 군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포격을 가했던 점,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강화성의 모든 민가에 불을 지른 만행을 기록하지 않고 있다”면서 반성을 촉구했다.
 
또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고해성사를 청했을 때,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살인자'라는 점을 들어 외면한 점(당시 빌렘 신부만이 감옥으로 찾아가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베풀었다)에 대해 “우리 민족의 고난과 아픔보다 교회내적 문제에 관심을 쏟았고, 일제 침략을 묵인 또는 방관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던 교회의 행태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끄러운 역사”라고 고백했다.
 
특히 골배마실, 미리내성지 등 13개 성지를 보유하고 있는 수원교구 내 성지와 남양주 정약용생가 등 천주교와 관련된 문화재도 상세히 다루고 있어 눈길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