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시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인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좋은 시와 좋은 시인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원래 그저 좋은 것은 희귀하게 마련이지만 시의 기본적인 품격조차 갖추지 않은 시의 과도한 생산은 시의 위력과 본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 볼 일이다. 영상 매체의 발달에 따라 활자 매체의 존립 근거가 퇴색해 가고 있다는, 단순하고도 문학 외적인 진단에 의한 시의 위기론보다는 좋은 시의 위기를 우려해야 할 시점이 지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시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시는 기존의 시적 상상력을 무너뜨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언어 표현이 생기를 얻을 때 발아한다. 단 한 편만 뽑는 신춘문예를 의식해서일까. 모두들 수준이 엇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오래된 집'은 크게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시다. 시에서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도 오랜 수련의 결과로 생각된다. 하지만 소품이라는 점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때로 시의 스케일을 크게 잡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밥상'은 발상이 참신하고 평범한 소재를 평범하지 않게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시를 세밀하게 다듬는 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난데없는 돌부리들이 곳곳에 출현해 시의 품격을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마장 풍경'과 '철거지역' 두 작품을 놓고 고심했다. 앞의 시는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시에 삶의 온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감각적 표현도 아주 볼 만하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본 듯한 몇몇 이미지들이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당선작으로 고른 '철거지역'은 주체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객관적 묘사의 시다. 특별히 눈에 띄는 표현은 없지만 안정적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는 점이 믿음직스럽다. 상처 입은 것들에 시의 렌즈를 들이대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정희성·안도현 시인
[신춘문예 심사평]
입력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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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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