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내년 대선을 앞둔 여야가 당체제 정비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김근태 의장 비상지도체제로 당을 재정비한 뒤 정계개편에 임할 태세다. 한나라당은 당 대표 경선 드라마의 흥행을 위해 분주하다.
5·31 지방선거는 내년 12월 대선 전망과 관련 `천기'를 살짝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참패한 여권은 노무현 대통령과 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물론, 대권후보 조차 변변치 못한 냉엄한 현주소를 실감해야 했다.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믿음직한 `빅 3 후보군'이 진을 치고 있다. 향후 당쇄신과 후보 단일화에만 성공한다면 정권 교체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에다, 여권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대권 레이스를 펼칠 수 있게된 점이 든든하다. 노 대통령과 우리당의 처지에서는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에 버금가는 대권주자를 내세우지 못하는 한, 정국 운영과 대권 레이스에서 한나라당에 압도당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열린우리당〉
향후 대권싸움에서 우리당은 한나라당에 이끌려갈 공산이 크다. 청와대는 개혁의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당은 정동영 전 의장의 낙마와 함께 예비 대권후보자 한 명 없는 수렁에 빠졌다. 당 지지층의 근간인 수도권 호남출신과 40대, 여성 주부층이 붕괴됐다. 강금실, 진대제 씨 등 유망주들도 지방선거에서 전멸했다. 그 결과 우리당 대권후보군의 두께는 극도로 얇아졌다.
우리당으로선 한나라당의 박 전 대표나 이 전 시장과 각을 세울만한 후보가 절실하다.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충청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념적으로는 중도 개혁, 인맥으로는 김대중 계보를 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이다. 범여권 통합론의 배경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뿐만 아니라 국민중심당을 포함하는 중도개혁 세력을 통합해 이념적·정책적으로 융합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노심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는 것. 선거 참패에도 불구, 노 대통령은 `전국정당을 통한 정권 재창출'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6월말 각종 여론조사 지표상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10% 초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노대통령은 “절대로 우리당을 탈당하지 않겠다”고 못박거나, `김병준·권오규 부총리 기용'이란 코드정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노대통령과 선을 긋지 않는한 우리당의 정권 재창출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우리당이 범여권을 융합적 수준으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노대통령과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코드정치를 용인하는 한, 내년 대선 구도는 또다시 `한나라당 후보 대 노무현 대통령”의 게임이 된다는 분석인 셈이다. 여권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여권의 대권 지형은 당·청간의 갈등 속에서 예비주자 중 누가 주도권을 쥐는 행운을 잡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고건론
여권의 후보가 없다보니 고건 전 총리 영입론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고건론은 허구'라는 주장이 대세다. 호남출신 중도성향의 우리당 한 중진은 “고 전 총리는 무늬만 호남 출신이고, 이념적으로 보수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며, 박정희 정권하에서 관료로 성장해온 사람”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고 전 총리가 특정 정당에 속하는 순간 지지도의 절반은 빠져버릴 것”이라고 말을 잘랐다. 고 전 총리가 범여권의 통합 후보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김근태 의장론
김근태 비대위의장의 가장 큰 딜레마는 대중적 지지도에 있다. 이는 노대통령과 정책적, 대국민적 메시지 전달 면에서 어떻게 차별화를 시켜나갈 것인가에 달려있기도 하다. 노대통령은 지난 28일 우리당 지도부와의 청와대 회동 직후 교육부총리와 경제부총리를 전격 교체했다. 당 비대위 지도부와는 전혀 상의가 없었다. 더욱이 내정된 권오규 경제수석이나 김병준 정책실장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코드정치를 주도해온 `노무현의 그림자'들로 지방선거를 망친 장본인으로 공격받아왔던 터다. 당 일각에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이 역력했다. “뒷통수를 맞았다”는 것. 결국 김 의장의 정치적 명운은 노대통령과 계급장을 떼고 한판 붙느냐와 그 결과에 달려있다.
※천정배론
천정배 법무장관은 우선 정동영 전 의장과 이미지가 겹친다. 그리고 천 장관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으로 DJ의 고향과 겹친다. 게다가 3선의 국회의원, 원내대표, 법무장관을 거치기는 했으나, 대권후보로서 검증된 바는 없다. 즉 남북통일정책, 경제정책대안과 비전 등이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는지 미지수이다. 최근 천 장관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다”며 당에 복귀하지 않은 점도 곱씹어 볼만하다. 레이스에 참여할 의사가 별로 없다는 뜻으로도 읽혀져서다.
※정동영 복귀론
백의종군을 선언한 정동영 전 의장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정 의장은 일단 한달여간의 영국 유학길을 선택했다.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 본 정동영의 이미지는 또 다르다. `정동영 복귀론'은 우리당의 리더십 부재 상황이 깊어질 경우 힘이 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동영 또한 체계화된 정치 철학과 새로운 경제정책 대안으로 재무장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한나라당〉
한나라당이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수구성의 혁파와 국민으로 부터 대안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요체이다. `꼴통 보수' 또는 `영남당'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당내에는 무언의 정풍운동이 확산되고 있고 대권 주자들도 이같은 절체절명의 과제를 풀기위해 `내공'을 연마 중이다. 최근 7·11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내 소장·중도파 인사들이 독자 후보를 내 중진 그룹을 위협하고 나선 것도 당의 변화를 모태로 2007년 대선에서 기필코 정권을 되찾아야겠다는 의지의 또 다른 표현으로 봐야 한다.
5·31 지방선거 압승으로 한나라당 대권 후보군은 사실상 공고해졌다. 강재섭 전 원내대표가 당권 도전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삼각편대'를 이룬 것. 물론 `여권발' 개헌론과 정계 개편에 따른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박-이-손' 경쟁 구도가 쉽사리 깨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빅 3'의 경우 판세에서도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경우 대중 여론조사에서 강세를 유지하고있으나 최근 민심 대장정에 나선 손 전 지사의 경쟁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대중성의 경우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강세가 두드러져 있지만 손 전 지사는 오피니언 그룹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한나라당의 극복 과제인 영남당 이미지를 단 숨에 탈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연 `다크호스'이다.
`박-이-손'의 경쟁구도가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지지층이 매우 차별화된 점에 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국민경선을 통해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면 이번 한나라당 후보 경선은 서로 다른 지지층간의 경쟁구도로 스릴있는 게임이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를테면 10~20대 및 여성층으로 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박 전 대표와 40~50대 직장인 및 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전 시장의 지지층은 극명하게 다르다. 또 대학 교수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지도가 높은 손 전 지사의 역량도 상호 보완 작용을 하며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어 관전자들로 흥미를 배가시킨다.
또 지역적으로도 서울과 수도권 대표주자인 이 전 시장과 손 전 지사에 비해 박 전 대표는 영남권 대표 주자라는 점이 대조적이다.
이념적으도 애국심을 근간으로 하는 박 전 대표는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화합형 후보인데 반해 이 전 시장은 추진력을 앞세운 내실형이라는 점이 두드러져 있다. 학자풍의 손 전 지사 역시 경기지사 시절 140개 외국 기업을 유치한 이력과 깨끗한 이미지에 무게가 주어져 있어 이들 세 사람의 대권 플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노무현 탄핵 광풍'이 일었던 지난 2004년 4·13 총선을 앞두고 `구당(救黨)의 잔다르크'로 나서 2년 3개월 동안 대과없이 당을 이끌었다. 한나라당이 야당이 된 뒤 임기를 채우고 대표직을 물러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그의 불편부당한 당 운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1천억원에 달하는 당 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천막 당사에서 시작한 결단과 지도력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현재까지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한 것도 이같은 `무욕'의 정치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라는 평가이다.
따라서 두 번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5·31 지방선거에서 완승하고, 대과없이 당 대표직을 마치면서 `박근혜의 정치드라마', 즉 그의 대권 도전의 서막이 열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가 당 대권 후보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내는 동시에 엇비슷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이 전 시장과, 경선을 앞두고 화력을 증강중인 손 전 지사의 높은 벽을 뛰어 넘어야 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이 전 시장의 강점은 단연 추진력이다. 그 말고는 몇십년간 두고 엄두를 못냈던 `청계천 복원 사업'을 임기내에 이뤄냄으로써 대중들에게 열정적인 리더십의 면모를 심어주었다. 강한 추진력으로 성공 신화를 써 온 그의 이력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우리 경제를 확 바꿔놓을 적임자라는 대중의 신뢰를 키웠고, 그 결과 한때 여론조사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서울시의 교통문제도 이 전 시장에게는 대권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역대 어느 시장도 손대지 못한 서울시 교통문제를 버스 중앙차로제로 단숨에 해결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렇듯 그가 4년간 서울시를 운영하면서 보여준 리더십은 항공모함도 침몰시킬 수 있는 강인한 승부사적 기질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막무가내식 `불도저' 이미지와 함께, 정치권에 나도는 갖가지 루머들을 정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최근 경기지사 임기 만료와 함께 호남권으로 `민심대장정'에 나섰다. 여론조사에서 3%의 지지율 밖에 되지않지만 당내에서 `빅 3' 후보군에 자연스럽게 포함될 정도로 잠재력이 풍부하다. 호남행 열차를 타고 민심 속으로 파고 든 것도 한나라당의 불모지역으로의 서진(西進)행보를 통해 자신만의 지지기반을 다지고 오겠다는 의지의 피력이다.
국회 출입기자 여론조사와 대학교수 등 오피니언 리더 여론조사에서 `대통령감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 역시 경기지사직을 원만히 수행하면서 140개의 외자 기업을 유치한 실력 등이 정치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손 전 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고 있는 박 전 대표와 `황제테니스' `별장파티' 등 여권으로 부터 집요한 공격을 받았던 이 전 시장에 비해 흠결이 적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어 뒷심을 어느 정도 발휘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