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1시40분 경기도청 도지사 접견실. 당시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당선자에게 `경기도정 인수·인계서'를 넘겨주면서 강한 어조로 당부했다.
“오늘 오후 4시에 정부에서 수도권정비위원회를 열어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을 의결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도정공백이 있는 날이고, 수도권정비계획과 같은 중요한 안건은 신임 지사가 와서 검토한 뒤 의견을 전달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라 제가 회의 연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서울에도 연기 공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만일 관계 장관들이 안건을 의결할 경우 강력 항의하십시오. 이날 회의는 효력이 없음을 선언해야 합니다.”
이 같은 손 지사의 당부에 김문수 도지사 당선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집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7월 3일. 김문수 도지사는 제32대 경기도지사로 취임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엽니다'란 제목의 취임사에서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懦)에 비유하며,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악법인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책을 불태우고, 선비들을 땅에 묻어버렸던 분서갱유보다 더 나쁜 법”이라며 “잘못된 것은 고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흘 전 정부의 일방적인 제3차 수도권정비계획안 의결에는 일언반구가 없었다.
선거과정에서부터 `수도권 규제철폐'를 주장했던 김 지사였기에 취임사에서 정부의 일방적 안건(제3차 수도권정비계획안)의결을 강력히 질타할 것이란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의구심이 들었다. 경기도와 정부가 피터지는 논쟁 속에서 담기로 했던 저발전지역(낙후지역)에 대한 정비발전지구 포함이나 수도권정비계획법의 마지막 보루인 자연보전권역의 일부(한강수질에 영향이 없는 지역) 규제를 해제하고 성장관리권역이지만 군사적 이유로 중첩규제를 받는 북부지역의 계획적 개발을 유도하는 중기권역제도 운용방안 등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또 그토록 민선 2~3기를 거치며 풀어내려고 애썼던 자연보전권역내 관광지 조성이나 대형건축물의 금지대상에서 삭제 등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의구심은 옆에서 지켜보는 관계 공무원이나 기자(경기도청 출입)들이 바라는 `즉각적인 대응'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꼴'임을 알게 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경기도(부천 소사)에서 3선을 지낸 국회의원 출신인 김 지사가 어찌 수정법의 폐해나 수도권정비계획의 중요성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출범부터 `전국토의 균형개발'을 주창하며 모든 부처보다 상위에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두고 행정수도 이전, 공공기관 지방이전, 수도권 기업의 지방이전, 비수도권의 특화발전지구 지정 등을 추진해 온 참여정부에 `논리'보다 `즉각적 대응'은 의미가 없음을 김 지사는 알고 있었다.
더욱이 취임 전부터 참여정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김 지사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자세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도광양회'. 중국의 덩샤오핑이 1980년대 개혁·개방정책을 밝히며 내세운 이 말은 현 후진타오 주석이 가장 즐겨쓰는 단어다. `어려운 시기에 칼날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
김 지사는 취임 후 수도권 규제와 관련된 부서에 수정법 등 수도권에 적용되는 모든 규제의 피해사례를 수집할 것을 지시했다. 또 수도권경쟁강화본부 등을 구성해 수도권 규제를 어떻게하면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것인가를 연구하도록 했다. 당선자 시절 서울·경기·인천 등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인 수도권의 주민들이 삶의 질 개선을 위해 내세운 `대수도론'이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사며 비수도권의 집단 반발에 부딪쳤던 김 지사였기에 `합리적인 논리'로 무장하지 않으면 참여정부나 비수도권의 반발을 무마할 수 없다는 체험이 낳은 `시행착오'의 교훈이었다.
김 지사의 이 같은 의중은 취임일인 3일 경기도청 기자실에서 기자들의 `정부의 일방적 수도권정비계획안 의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의 답변에서 알 수 있었다. “(정부가) 실정을 모른다. 남을 꽁꽁 묶는 것도 중요하지만 희생에 따른 배려가 있어야 한다. 맑은 물 공급, 군사적 등의 이유로 희생과 고통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의 배려가 필요하다. 목적도 달성하고 지역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조만간 만회시킬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하겠다.”
특히 수정법은 상대성을 둔 정치적 성향이 강한 법이기 때문에 완화나 철폐가 쉽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김 지사는 “안다. 정말 힘든 일이니깐 하려고 하는 것이다”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취임 전부터 `열 받았던' 김 지사는 10일 드디어 칼을 뽑았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책건의서를 통해 지난달 30일 회의 진행 과정의 잘못을 꼬집고, 정부와 도가 약속한 4가지 안을 다시 수용해 줄 것을 정중히 건의했다. 그리고 우군(友軍)을 만들어 힘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13일 도내 국회의원과 정책협의회, 19일 한나라당 경기도당과 당정협의회를 예전보다 일찍 개최하기로 했다. 또 13일 충남지사를 비롯해 수정법 등 규제완화에 반대하는 수도권 인접지역 지사들을 찾아다니며 협조와 설득을 구하고, 상생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행보를 해 나가기로 했다. `도광양회'처럼 언제 때를 만나 칼을 휘두를지 예측은 미지수다. 그리고 25년간 수도권 주민들의 숙원인 수도권 규제 해소를 김 지사가 어떻게 풀어나갈 지, 그래서 어떤 정치적 손익계산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