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장수가 쌀장수를 등쳤다가 덜미를 잡혔다.
지난해 6월 어느날 수원시 장안구 율전동에서 과일가게를 하던 홍모씨는 `인근 A초등학교 체육교사'라는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체육교사'는 홍씨에게 “불우이웃 돕기행사에 쓸 과일과 쌀 100만원 어치를 배달해 달라”고 주문했다. 문제의 `체육교사'는 이어 “계산은 1천만원짜리 수표로 할테니 거스름돈을 준비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랜만에 `큰 건'을 잡았다고 생각한 홍씨. 홍씨는 들뜬 마음으로 부랴부랴 트럭에 쌀을 싣고 학교로 향했다. 교문을 지나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도 교직원 누구하나 제지가 없었고 홍씨는 의심없이 건물앞에 물건을 내렸다.
`체육교사'는 20㎏들이 쌀포대 하나를 손수 들고 “계산할테니 현금을 들고 따라오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홍씨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대신 들어드리겠다”며 쌀을 건네받았다. 바로 그 순간, 홍씨의 손에서 현금 900만원을 낚아챈 `체육교사'는 눈 깜짝할 새 줄행랑을 쳤다.
홍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앞이 깜깜하다”며 “한번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거래할 때 확실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당시 이 동네에서만 S마트, C청과상 등 세곳이 같은 `체육교사'에게 당했다. 물론 가짜 교사다.
자칫 미궁에 빠질 것 같았던 이 사건은 인근 식당 주인 B씨의 눈썰미에의해 덜미를 잡혔다.
사건 하루 전 B씨는 이상한 손님 4명을 맞았다. 식당앞에 흰색 그렌저 차량을 세워둔 이들은 대화중에 `배달', `수표', `거스름돈', `털어' 등 이상한 말들이 오갔고 이를 수상히 여긴 B씨는 차량번호를 적어뒀다.
얼마 뒤 사기사건 소식을 들은 B씨는 혹시나 하고 경찰에 차량번호를 알려줬고 결국 사건 1년여만인 지난 5일 용의자 박모(41)씨가 구속됐다.
박씨는 경찰에서 “나도 서울에서 쌀장사를 했는데 비슷한 사기에 당해서 혹시나 하고 나도 해봤다”고 말했다.
한편 B씨는 “사건이 한번 터졌을 때 경찰이 제대로 조치했다면 바로 다음날 코앞에서 연달아 당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그나마 수사에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