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사다리 (18)
뭐랄까. 흡사 위대한 작품 앞에선 예술가 특유의 집중력이라고나 할까. 이제 그는 강압적으로 그녀의 사지를 묶지 않는다. 그녀의 자유를 속박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그러나 야금야금 터치하고 있다.
물론 그녀가 입술을 열어 박준호의 그것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받아들이기는커녕 풀풀 바람 빠진 풍선인 양 한순간에 죽은 시체가 된 그녀가 더 이상 버둥대지 않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정말 그녀는 그린 듯이 누워 있다. 이 모든 일이 너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느낀 실망감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느냐는 듯이, 그녀는 눈을 감은 채 흡사 죽은 시체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그녀의 미동이 갑자기 시작된 것이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본능의 불씨가 어찌할 수 없게시리 발화된 것일까.
처음 그녀는 박준호를 끌어안는다기보다 반항하기 위한 팔놀림으로 손이 올라올 정도였는데, 어럽쇼, 어느 순간 등을 한껏 끌어당겨 박준호의 숨이 막히게 한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신음 소리도 내기 시작한다. 처음은 미미했지만 갈수록 대담해져서 나중에 발악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드디어 그녀는 골대에 골이 꽂힐 때마다 고함을 내지른다. 박준호는 마음 놓고 드리블을 한다. 그리고 강슛을 쏜다. 발리슛도 하고 바이시클 킥도 하도, 백 슛도 구사한다. 거의 일방적인 슛이다. 이건 축구가 아니라 숫제 농구 점수다. 십 대 영, 이십 대 영, 아니 백 대 영이다.
한 없이 한 없이 들어간다. 45분 전반이 끝나고 10분 휴식이 주어진 다음 다시 45분 후반으로 들어가는 것이 규칙이고 상례지만, 이번 박준호의 출전에는 휴식이 없다. 그대로 풀타임이다.
톰 라더 부인이나, 시루코 여사와의 그것이 오픈 게임이라면 지금의 이 장렬한 결합이 본 게임에 해당된다. 오늘의 이 빅 게임을 위해 그토록 잡다한 게임을 계속 소화했는지도 모른다.
얼핏 계산해도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이 일순의 바람처럼 스쳐가 버린 것 같다. 어느새 박준호의 이마와 가슴이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그녀 가슴으로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 일까. 그녀도 땀투성이인 것 같다.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땀이 흡사 올리브유를 바른 터키탕 남녀처럼 번들거린다.
마침내 갈기를 털어 대는 수사자처럼 박준호가 머리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머리칼의 땀이 후득후득 떨어진다.
“으으-흡!”
짐승의 그것처럼 진한 탄성을 내지른다. 바로 그 순간이다. 박준호가 그녀의 야릇한 신음 소리를 들은 것은 아, 그녀의 그 같은 조짐은 진작부터 감지되었는지도 모른다. 가령, 슛 골인이 될 때마다 고개를 좌우로 비낀다든가, 주먹을 불끈 쥔다든가, 발가락에 너무 힘을 주어 안으로 휘어지게 만든다든가 하는 미세한 변화 따위가 바로 그런 조짐이다.
하나 그뿐이다.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는 이를 앙다물고 치솟아 오르는 신음을 안으로 삼킨다. 그리고 다시 죽은 시체가 되어 버린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사위가 깜깜하다. 일렁이던 불 그림자도 없다. 벽난로를 본다. 벌써 불이 죽어 가고 있다. 원둥치 그대로의 통나무가 다 타 버렸다면 실제로 두 시간은 족히 지났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