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압승이라는 5·31 지방선거 결과는 중앙 정치권의 승패를 결정짓는 잣대로는 유효했다. 정부 여당은 심판받았고, 한나라당은 정권 탈환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선거 결과가 지방자치의 본질을 왜곡시킬 것이라는 우려 또한 적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당이 편파적으로 독식한 시·도 단위의 광역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는 지방 행정에 대한 주민의 참여와 견제라는 지방자치의 기능을 발휘하기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실정이다. 아무런 견제가 없는 상황에서 지방 선량들의 관심은 주민 이익 실현이라는 자치 목적보다는 자기 이익이나 정당 이익을 추구하는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이 제7대 도의회 출범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이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조차도 당선자 시절 “한나라당이 너무 크게 이겼다”며 “도정이 브레이크 없이 굴러갈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던 현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의원들끼리 파벌을 형성해 의회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맞붙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회 도의원 119명중 115명(96.6%)을 당선시켜 사실상 지방의회를 장악했다. 더욱이 지역구 도의원 108석 모두를 석권하고 비례대표 11석중 7석을 차지하는 등 선거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적인 승리를 거뒀다.
 대승을 거둔 한나라당은 승리감에 도취돼 의회직을 놓고 심각한 내홍에 휩싸였다.〈4면에 계속〉

 갈등의 양축은 도의회 자율성과 정체성을 강조하는 비주류 자주파와 도당을 앞세운 주류 도당파. 이들은 의장단, 대표의원, 상임위원장 등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내부의 반목을 키웠다.
 자주파는 도덕성 논란을 빚거나 함량 미달로 평가되는 인사들이 주류파에 의해 중용되자 `노무현식 코드 인사'라며 직격탄을 날리며 반발하고 있어 양측간 갈등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장면 하나(대표경선).
 한나라당 의원들을 갈등으로 몰아간 단초는 대표의원 경선이다. 당초 한나라당 재선이상 의원들은 단합과 단결을 통한 대선전략 차원에서 자율적 조율로 사실상 단일후보 추대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따라 재선과 3선의원(42명)들은 지난달 16일 의원총회를 갖고 다선 존중의 관행에 따라 3선의 최규진(수원) 의원에 대한 단일후보 추대안을 마련했다. 당시 함진규(시흥) 의원은 경선 실시안을 주장해 난상토론을 벌인뒤 투표를 통해 단일후보 추대안을 확정했다. 참석의원 34명중 17명이 단일후보 추대안을 지지했고 함진규 의원이 주창한 경선실시안은 15표에 그쳤다.
 그러나 함진규 의원은 이날 의총결과는 과반수를 넘지 못해 법적구속력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반발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재선이상 의원들은 함 의원의 반발을 받아들여 지난달 22일 오전과 오후 2차례에 걸친 의원총회를 갖고 똑같은 방식을 놓고 표대결을 벌였다. 투표 결과는 참석의원 29명중 19명이 최규진 의원에 대한 단일후보 추대안에 동의했다. 반면에 함진규 의원이 주장하는 경선실시안은 6표에 그쳤고 4명은 기권했다. 함 의원은 이날 전체 당선자 회의에서 이같은 합의안에 동의하는 절차도 밟았다.
 그러나 함 의원은 이같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채 도당파를 등에 업고 다음날인 23일 실시된 당선자 대회에서 대표의원 경선출마를 강행했다. 함 의원은 고려대 선배인 홍문종(의정부갑) 도당위원장의 측면 지원을 받으면서 남부권 맹주인 남경필(수원팔달) 의원과의 대리전으로 확전시켰다. 경선 결과는 여성과 도당파를 앞세운 함 의원이 61표를 얻어 자주파 지원을 받은 최규진 의원(49표)을 누르고 당선됐다.


 #장면 둘(의장단경선).
 대표의원 경선에서 도당파가 압승을 거두자 자주파 진영은 큰 혼란에 빠졌다. 도당파는 의장에 3선의 신광식(의정부) 의원을, 부의장에 재선의 장정은(여·성남) 의원을 전면에 내세워 연승을 겨냥했다. 초선 당선자 대부분이 공천권을 쥐고있는 도당측 요구를 외면하기 힘든 상황을 무기로 활용했다.
 이에따라 자주파 의장 경선후보인 양태흥(구리) 의원 진영은 비상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더욱이 도당측에서 양 의원에 대해 후반기의장을 담보로 제공하면서 사퇴요구론까지 불거지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같은 위기에서 자주파들은 도의회가 송두리째 도당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하는 것을 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중립적 인사들을 잡기위해 뛰기 시작했고 전략은 주효했다. 양태흥 의원은 지난달 29일 열린 의장 경선에서 60표를 얻어 도당파 지원을 받은 신광식(50표) 의원을 누르고 당선돼 양측간 1대1의 균형을 이루었다. 이번엔 도당파가 당황했다. 부의장도 경선을 실시할 경우 밀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함 대표는 서둘러 여성 몫으로 부의장을 지명하겠다며 경선을 막았다.


 #장면 셋(상임위원장 인선).
 10명에 달하는 상임위원장 인선을 둘러싸고 도당파와 자주파간 갈등은 극에 달했다. 함진규 대표의원은 자주파와 중립적 인사들의 경선 요구를 철저하게 묵살했다. 임응순(시흥) 의원은 “경선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민의를 저버리겠다는 발상”이라며 “노무현식 코드 인사가 도의회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거칠게 항의하며 경선을 요구했다.
 함 대표는 의정경험 지역안배 전문성 도덕성 등을 기준으로 상임위원장을 선정한다고 인선 원칙까지 밝혔다.


 그러나 지난 9일 지명된 상임위원장은 서부권과 동부권에서 각각 4명씩 차지한 것으로 드러나 지역안배 원칙이 무너졌다. 심지어 경찰 조사를 받은 인사를 지명하는 등 스스로의 기준을 허물어트려 친소관계와 논공행상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나눠준 것 아니냐는 자주파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여성 몫 상임위원장을 놓고도 도당파와 자주파간 갈등이 심각하다. 도당파 여성의원은 정금란(비례대표) 의원을 지지했고 자주파 여성의원들은 정홍자(안양) 의원 지지로 갈렸다. 합의점 도출에 실패하자 경선을 실시했고 7대5로 자주파가 승리했다.


 또 상임위원 배정도 지역 안배와 전직 위원장 배제원칙 등을 무시하고 봐주기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에 자주파들은 철저하게 희망 상임위에서 배제시켜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자주파 의원들은 부위원장제 도입에 대해 후반기 상임위원장을 도당파가 사전에 내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놓지 않고 있다. 특위 구성에 따른 위원장 선임을 놓고도 양측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