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신상협회는 1896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객주단체에서 발전했으며 서상집과 박명규, 서상빈 등의 객주상인이 주도했다.
1885년 자연발생적으로 결성된 객주조합이 때로는 폐단을 일으키는 일이 생기자 정부는 이를 관장하고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1895년(고종 32) `상무회의소규례'를 제정·공포하였다.
신상협회는 이름이 변경되어 1889년에 신상회사로, 1911년에는 다시 신상협회라 불려지기도 했다.
이에 준거해 인천객주상회가 모체가 되어 만들어진 이 협회의 목적은 상인에 대한 계몽과 국가 재원을 부유하게 하는데 있었다.
정부를 대신해서 영업세를 객주들로부터 연 2회 대신 징수하는 특권을 가졌고, 외국상인으로부터 회원의 상권을 옹호하는 등 민족계 상인의 상업자세 혁신을 촉구했다.
우리 상인들이 외국 상인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보호하는 한편, 협회의 기업가들은 의연금 모집 등에 동참해 국채보상운동과 학교설립 비용으로 사용하는 등 애국 활동에도 힘썼다.
인천신상협회는 군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하며 폭력적 상거래를 한 일본인 계림장업단의 비행을 규탄하고 정부에 그 단체의 해산을 강력히 건의해 결국 계림장업단을 해체시켰다.
역사적으로는 객주조합에서 근대적 상업회의소로 발전해 나가는 과도적 상인단체였다. 1905년 인천신상회사는 인천조선인상업회의소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