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새 법무장관 인선에서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기보다는 당·청간의 원만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 안정적 국정운영을 택했다.

김병준 전교육부총리 사퇴파문에 이어 당·청간 인사권 갈등이 정면충돌 일보직전까지 확산됐던 상황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문재인 카드'를 접고 김성호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을 최종 낙점했기 때문에 그 의미와 효과가 배증됐다.

■ 안정적 국정운영 선택=`노심'이 `유턴'한 것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빨간 불' 신호등을 무시하고 직진하기에는 당·청 관계가 예상치 못한 파국을 맞을수도 있고, 이에 따른 국정운영의 불안정성도 가중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임기말로 접어드는 현 시점에서 참여정부 최대 국정현안으로 꼽고 있는 사회 양극화 해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나 북핵과 한미동맹 등 외교안보 현안들은 국회, 특히 여당의 전폭적이고 일사불란한 후원이 없이는 해결하기 힘든 사안들이다.

가뜩이나 여당 내부에서 5·31 지방선거와 잇단 재·보선 참패 원인을 청와대로 돌리며, 노 대통령과의 차별화 시도가 구체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 카드' 강행은 사태의 진전 여하에 따라 정치지형의 급변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었다.

노 대통령은 임기말 정책 현안에 집중하기 위해 정국의 유동성이 커지는 것은 원치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연초부터 “지난해 대연정 제안을 마지막으로 정치적 승부수 같은 것이나 중대결단은 없다”고 말해왔다.

■ 대통령 인사권 주도 `명분' 유지=그렇다고 `문재인 카드'의 철회가 당의 주장에 밀린 노 대통령의 일방적 양보라고만은 해석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주초까지만 해도 여당 지도부의 `문재인 비토론'에 직면, 대통령 인사권 자체가 근본적으로 도전받았고,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퇴진파동까지 겹치면서 `레임덕' 양상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는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이병완 비서실장, 박남춘 인사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의 공개적인 `여당 경고' 발언과 뒤이은 노 대통령의 당·청 회동 주도를 통해 상황은 반전됐다.

일련의 정치력 발휘를 통해 `권력투쟁'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도전받던 인사권이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점을 당지도부로부터 확약을 받고 당의 건의를 수용하는 형식으로 `결단'을 내림으로써 대의명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당·청관계도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법무장관 발탁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진 문재인 전 수석은 일찍이 임기말을 함께할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돼 왔던 만큼 다시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

■ 안정속 검찰개혁 추진 포석=신임 김성호 법무장관 내정자는 검찰 출신이라는 점에서 검찰 내부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어 일단 검찰 조직의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내정자가 참여정부 출범후 부패방지위,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을 거치며 검찰이 반대해온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옹호해온 검찰 개혁론자이기 때문에 안정속의 검찰개혁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검찰 출신이지만 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에 대한 `코드'는 충분히 맞추고 있고,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그런 역량이 충분히 평가받았던 점이 낙점 배경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남춘 인사수석도 “김 장관 내정자는 2004년부터 부패방지위 및 청렴위 사무처장으로 재직하면서 공직부패 방지를 위한 각종 제도 및 정책수립 등 관련업무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다”고 발탁배경을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