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귀국 ⑭

박상길이 자리를 가리킨다. 박준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김 관장, 아까 말했던 내 장조카야.” 손님께 소개한 다음,

“인사 드려라. 작은아버지를 많이 도와주신 분이시다.”

할아버지에게 하는 식의 인사를 원하는 눈치다. 박준호는 거실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한다.

“어, 그럴 거 없는데… 그래, 그래. 반갑구만… 자, 앉아. 내 술 한잔 받지.”

김 관장이란 사람이 급하게 비운 술잔을 내민다.

“저 술 못합니다.”

“괜찮아. 한 잔쯤은 괜찮아.”

억지로 술잔을 들이민다. 박준호가 박상길을 본다.

“주시는데, 한 잔 받아라.”

작은아버지가 말한다. 박준호가 잔을 받아 고개를 돌려 입술에만 적시고 돌아앉자,

“박 선배님, 선배님께 무술 배운 사람들 중에 운동신경이 젤 뛰어난 제자가 바로 이 조카란 말씀이죠?”

박상길이 아무리 조카지만 장본인의 면전이라 쑥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건 사실이야.”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이 친구는 프로가 아니잖습니까?”

“나는 프로 무술인을 키우는 게 아니야. 자기 수양을 목적으로 땀 흘리는 건전한 스포츠맨을 기르고 싶을 따름이지.”

“그래도 최강자급 무술인을 제자로 길러야죠.”

“최강자? 김 관장도 알고 있겠지만 내 제자 중에 문제의 두 놈 있잖아? 운동으로 이름깨나 했던 놈들…. 김철구하고 주조갑이 말이야. 주먹하나 믿고 이상한 곳의 앞잡이 노릇하는 자식들. 그렇다고 순수한 주먹도 아니고, 깡패도 아니고… 흡사 일제시대 주재소 밀대 노릇 하는 조선인처럼 나쁜 짓을 밥 먹듯 하는 놈들 말이야.”

“선배님이 한번 불러다 알아듣게끔 훈계를 하시지요.”

“놈들은 훈계를 들어먹을 녀석들이 아냐. 한마디로 스승도 없고 선배도 없어. 정신 수양이 안 돼 있어서 그래. 자기 수양 이전에 주먹 힘만 기른 후유증이지. 난 그런 유형의 놈들을 또다시 마포 도장에서 기르고 싶은 생각이 없어.”

“선배님의 그 고귀한 뜻을 과연 몇이나 알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 이유 때문에 이 마포 도장이 제 자리 걸음을 못 벗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국대회 우승자를 이 마포 도장에서 매년 팍팍 배출시켜야 수강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 건데….”


“술이나 들지.”

작은아버지가 특유의 카랑한 목소리로 일갈한다. 한데도 김 관장은 술잔을 잡지 않는다.

“선배님, 주제 넘는 얘기지만 제가 충고하나 해도 될까요?”

그리고 박상길을 저으기 바라본다.

“충고?”

“네, 꼭 드리고 싶었던 얘기라서….”

김만상이 준비라도 하는 듯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입을 연다.

“다름이 아니라, 그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대책위원회 말입니다. 그거 그만 손을 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