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지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차남 조우성(60·인천 광성고 교사)씨는 “내가 문인으로 활동하게 된 데는 아버님의 영향이 컸다”고 밝혔다.
어린시절 조씨의 양철도당집 안방은 책으로 가득차 있었다. 조씨는 “내 키도 훨씬 넘는 높이였는데 그 책들이 무슨 내용인지는 20대에 들어서야 겨우 살펴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르낭의 예수의 생애, 서정주 선생의 화사집, 황순원 선생의 학, 김동리 선생의 실존무 등은 그 시절 아버님 책장에서 내가 뽑아들었던 책들”이라고 회고했다.
`새벗' `학원' `논단'과 같은 잡지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수필가 최정삼씨가 운영하는 서점(문조사·文潮社)에서 책을 쉽게 빌려볼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다고 우성씨는 말했다.
천연색 사진으로 무장된 귀한 사진잡지를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에겐 영화와 형광등에 얽힌 일화도 좋은 추억거리. 아버지와 교분이 두터웠던 인천문화원 어른들이 영사기를 직접 집에 갖고 와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상영했던 `메인 주(州)의 덩어리', `리버티 뉴스' 같은 영화들은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또 “백열등 밖에 모르고 살던 때 아버님이 미군부대에서 구해온 형광등을 켜자 온 동네가 환호성을 질렀던 일, 저녁때마다 무슨 통과 의례 모양 끓여먹던 향기 짙은 커피 향”도 잊을수 없는 추억이다.
특히 조씨는 아버지가 시인이 되겠다고 허둥대던 자신을 유독 아낀 것으로 기억했다. 조씨는 “문단에 겨우 턱걸이를 하자 애지중지하던 만년필 `파커 61'을 선뜻 내주신 그 손의 온기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며 “엄격했지만 인간미가 넘쳐나는 언론인이자 문인이고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님의 모습이 그립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