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면 `더위야, 가라!' `공포물' `납량 특집' 등의 단어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같은 공포물의 `코드'도 유행에 따라 변하고 있다.
예전의 공포물은 물레방앗간과 깊은 산 속 공동묘지에서 벌어지는 귀신들의 오싹한 전설이 주류를 이뤘지만 90년대 들어 `피와 살이 튀는 엽기'가, 최근에는 주술과 주문 등 일본식 기·괴담이 유행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날. 시대에 따른 `공포 코드'의 변화를 살펴보자.〈편집자주〉
◇1970~1980년대:전설의 고향
무더운 한 여름밤에도 이불을 뒤집어쓴 채 보곤 했던 여름철 납량특집의 대명사 `전설의 고향'.
30~40대 청·장년층에게 이 프로그램은 더위와 함께 찾아오는 아련한 추억마저 자극한다.
그중에서도 예쁜 새색시가 밤이면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로 변해 사람의 간을 내어 먹는다는 `구미호'는 단연 백미. 최근까지도 각색돼 상영됐고 많은 여배우들이 구미호로 열연해 큰 인기를 모았다.
또 `공포물 계의 명대사'로 꼽히는 “내 다리 내 놔” 역시 전설의 고향 `덕대골'에서 비롯됐다.
솜씨 좋은 화가가 그린 듯한 산수화가 화면을 장식한 가운데 으스스한 피리 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시작되는 `전설의 고향'은 전통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1980년대:바다와 우주
80년대 공포물은 바다와 우주 등 좀 더 다양한 소재로 우리들을 자극했다.
`죠스' 시리즈는 식인 상어를 소재로 한 해양 공포 영화의 대명사.
번잡한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즐기던 등장인물은 어느새 일행과 동떨어지게 되고. 그 때면 어김없이 울리는 음악(사실은 신세계 교향곡(드보르자크)의 일부분이지만)과 함께 바닷물은 시뻘겋게 물든다.
또 정통 공포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주에서 인간을 숙주로 삼아 끝없이 번식해 나간다는 내용의 `에일리언' 시리즈도 당시 `공포 코드'로서의 한 획을 그었다.
◇1990년대 초·중반:외국 귀신들이 몰려온다!
1990년대 초반의 공포 코드는 `외국 귀신'이 주류를 이뤘다.
특히 중국에서 온 `강시'는 `줄을 지어 통통 튀며 다닌다'는 재미있는 설정과 부적, 찹쌀, 목검 등 다양한 `퇴마술(退魔術)'이 등장하면서 어린이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강시'는 각종 학용품과 운동화 등 캐릭터 상품으로 발전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당시 수많은 어린이들은 강시의 `내습'에 대비해 숨을 참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숨을 쉬지 않으면 강시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고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또 `드라큐라'(루마니아)와 `뱀파이어'(미국), `미라'(이집트), `늑대인간'과 `좀비'(영국) 등도 영화화돼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했다.
성경속의 악마를 다룬 공포 코드도 이때 절정을 이뤘다.
◇1990년대 후반:슬래셔 무비(Slasher Moive)
연쇄 살인마, 칼, 도끼, 망치, 야구방망이, 그리고 빨간 피….
`스크림' `하우스 오브 왁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 사건' 등 한정된 공간에서 얼굴을 알 수 없는 살인마가 영화속 등장인물(특히 젊은이들)을 몽땅 무차별 죽음의 파티로 이끄는 공포 코드가 90년대 후반 주류를 이룬다.
살인마의 살인 목적은 없다.
빨간 피와 흉기, 갑작스런 음향, 그리고 추리소설 같은 마지막 반전으로 우리들을 공포로 몰아간다.
◇2000년대:저주, 학교 괴담
“빨간 마스크를 만나면 2층 이상 건물로 도망가라. 또 `포마드'를 세번 외치거나 가락엿을 주면 물리칠 수 있다.”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공포 코드는 피와 흉기를 벗어나 학교 주변에서 떠도는 `학교 괴담'과 여자들의 `저주'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영화 `여고 괴담' 시리즈는 항간에 떠돌던 `분신사바'나 `학업 비관 자살' 등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구체화 함으로써 공포영화의 한 코드로 자리잡았다.
또 `저주받은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 1주일 내에 죽는다' `여인의 질투로 인한 살인 사건'과 같은 식의 `저주'도 주요한 공포 코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 `도쿄 기담집', 오가와 요코의 `임신 캘린더' 등 기존의 괴담(怪談)에 비해 비교적 `점잖은' 내용을 담은 기담(奇談) 형식의 공포 코드도 최근 유행하고 있다.
※괴담 박스 〈이천 `아리산 괴담'〉
최근 이천에서는 `아리산'과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일명 `아리산 괴담'이라고 불리는 이 유언비어는 한때 주부들을 비롯해 학생들에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 재생산되면서 인근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아리산 괴소문’은 지난달 초 아리산으로 매일 등산을 다니던 한 할머니가 `정신 이상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으로 시작됐다.
이어 정신 이상자가 할머니를 살해하고 돌무덤까지 만들어 암매장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괴담’으로 이어지면서 절정에 달했다.
경찰 확인 결과 이 소문들은 모두 근거 없는 ‘헛소문’으로 밝혀졌으나 한달 넘게 괴담이 지속된 탓에 아리산에서 산책과 운동을 하던 시민들의 발길도 끊기기도 했다.
이번 ‘아리산 괴담’은 지난 2003년 ‘설봉산 괴담’에 이어 이천 지역에서 퍼진 두 번째 괴담.
당시 ‘설봉산 괴담’은 설봉산에서 운동을 하던 주부가 성폭행을 당한 뒤 암매장됐고 설봉호수에 귀신이 출현한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이 소문은 여주 등 인근지역까지 퍼지는 바람에 해병대 전우회까지 나서 순찰을 강화하는 등 소동을 빚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