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이 날 듯한 무더위속에 꽉 막힌 도로위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20대 후반의 직장인 `이엉큼'씨.
 “덥다 더워, 시원한 맥주라도 마셨으면 좋겠네”라고 투덜대며 졸음을 참던 이씨의 눈이 갑자기 번쩍 뜨였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탱크탑과 초미니스커트를 입은채 승용차 앞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효리, 현영 뺨칠 정도의 S라인 몸매가 두조각 천으로 가려진 일부를 제외하고 눈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진 것이다.
 순간 `꿀꺽'하고 침을 삼킨 이씨의 머리속을 스쳐가는 한마디. “한번 만져보면 안되겠니?”

 노출의 계절이다. 특히 올 여름은 무더위도 무더위지만 미니스커트 유행이 그 어느때보다 `창궐'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한 인터넷쇼핑몰에서 팔린 미니스커트가 지난해보다 3배나 늘었고 미니스커트 길이도 평균 30~40㎝로 `얌전'하던 것이 올해는 20㎝ 안팎으로 `도발'했다.
 노출패션을 바라보는 뭇 남성들의 마음은 어떨까? `아무 관심없다'는 무관심론자도 있겠지만(남자 맞아?) 대다수가 `므흣'한 시선을 보낼 것이다. 물론 앞서 이엉큼씨처럼 `엉뚱한 상상'만 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씩 어이없는 성추행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않다.
 과도한 노출이 성범죄를 유발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여름철 유난히 늘어나는 성폭력 사건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꼭 무관하다고 할수도 없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여름철 성추행이나 성폭행 혐의로 붙잡힌 피의자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뻔뻔한' 사건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할인매장이나 백화점, 길가에서 성추행을 하는가 하면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음흉한 손길'을 뻗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반지하 다세대주택에 혼자 살던 20대 여성 A(29)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힌 C(30)씨. C씨는 경찰에서 “창문으로 A씨가 속옷만 입은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욕정을 참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공무원인 S(41)씨는 지난 1일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모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지나가던 B(30)씨의 엉덩이를 만지는 등 추행했다가 B씨의 남자친구와 주먹다짐까지 했다. 술에 취한 상황에서 순간의 욕망을 자제하지 못한 것이다.
 찜질방은 최근 3~4년새 급부상한 성폭력 사건의 주무대다. Y(44)씨는 수원의 M찜질방에서 나란히 잠자던 20대, 40대 여성의 가슴을 만지고 엉덩이를 비비다 경찰에 붙잡혔다. 찜질방의 경우 24시간 영업인데다 손님들이 입는 옷이라고 해봐야 반팔, 반바지가 전부이다 보니 정신나간 남성들의 성폭력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6일에는 대담하게도 수원의 한 대형 할인점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 앞서가던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40대 남자가 붙잡히기도 했다.
 수원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아무래도 겨울철보다 여름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여성들의 노출이 심하다 보니 자극을 받아 의도적 혹은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낯선 남자들과 늦게까지 어울리다 보면 우발적인 성범죄에 노출되기 쉽다”며 “외부인의 침입이 쉬운 다세대주택같은 경우 방에 불을 켜고 외출하거나 현관에 남자 구두를 놓아두는 것도 좋은 예방책이다”고 설명했다.


 ●여름철에 성폭행 많다=지난 5월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름철을 끼고 있는 5~8월에 성폭행 사건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산부인과 김태희 교수가 지난 2001년부터 올해 2월까지 병원을 찾은 성폭행 피해자 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 피해 발생 시기는 5~6월이 13명(31%), 7~8월이 11명(26.2%)으로 5~8월이 절반 이상이었다.
 9~10월과 1~2월이 각각 7명(16.7%)으로 뒤를 이었고 3~4월 3명(7.0%), 11~12월 1명(2.4%) 등이었다.
 시간대별로 보면 자정에서 새벽 3시사이가 33.3%로 가장 많았고 새벽 3~6시(14.9%), 오후 9시~자정(11.9%) 등의 순서였으며 오후 3~4시 사이에도 9.5%나 발생했다. 가해자는 모르는 사람이 54.8%에 달했고 친구, 동료 등 알고 지내던 사이는 38%였다.


 이같은 결과를 볼때 노출과 성폭력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단정짓지는 못하더라도 노출, 바캉스, 방학 등 여름에만 체험할수 있는 여러가지 환경이 성폭력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 볼수 있다.
 수원여성의전화 부설 통합상담소 이영희 소장은 “여름철 성폭행 발생빈도가 20%가량 높다는 보고도 있지만 술을 많이 마시는 연말연시에도 자주 발생한다”며 “성범죄의 가장 밀접한 요소는 바로 술”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이어 “여름철 여성의 노출이 범죄로 이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제력을 잃은 일부 남성들의 책임이다”며 “과도한 노출이 성폭행을 하고자 하는 남성에게는 좋은 핑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