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귀국 (18)

물론 헤이스팅스 어머니에게서 박준호의 행방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었고, 그 때만 해도 박상길이 사고를 당하기 전인데다가 더불어 박준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해주었으므로, 일단은 그쪽에 관심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어쨌거나 대니 라일러를 비롯한 어머니까지 뇌리에서 싹싹 소리 나게 지워버릴 수 있었던 박준호였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바로 박준호의 모든 것을 바꿔 놓는 계기다. 향후 계획이나 설계는 물론이고, 시간 공간을 비롯한 방향과 진로까지 완전 무결하게 뒤 바꿔놓게 만든 전환점.

우선 병석에 누운 할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박준호가 헤이스팅스의 어머니를 포기하고 서울에 주저앉게 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숙모님도 살아 있고, 그의 딸, 그러니까 박준호의 사촌 여동생도 있었지만, 듣는 기능과 보는 기능을 상실한 장애인으로 태어난 까닭에 일찌감치 재활원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다.

어찌 보면 할아버지가 박준호에게, 호령박씨 집헌궁파니,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이니, 용 반지니, 그처럼 신경을 곤두세워 장손 교육을 시켰던 이유도 박준호가 아니었으면 사실상 손이 끊길 뻔한 집안 사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작은아버지를 붙들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숙모님의 양해와 관계 없이 어디선가 아들 하나쯤 더 만들어 오기를 갈망했지만, 그때마다 “아버님.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은 장손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전 집사람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라도요.” 한마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버리고 만다.

말 그대로 천부당만부당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찌 병석에 누운 할아버지를 재활원만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해도 하루 해가 짧은 숙모님에게 내던져 놓고 런던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어쨌거나 박상길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초라하다. 박상길의 황당한 죽음을 애도하는 손님보다 경찰과 검찰의 관계자 수가 더 많다.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인 범죄 수사에 차출된 수사 인원은 막상 몇 명 안 되는데, 웬 사복 입은 요원들이 그리 많은지 발길에 차일 지경이다. 아니, 경찰 검찰 뿐 아니다. 방첩대니, 안기부니, 대한민국 온갖 수사기관은 모조리 출동한 것 같다.

한결같이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귀에도 레시버를 꽂고 있다. 저마다 특수임무를 띠고 있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관제 장례식이다. 식장 근처 주차장이 온통 검정색 관용차로 꽉 들어차 발 디딜 틈새가 없다.

모르긴 해도 어떤 주요 인사가 참석하는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누구와 어울리는지, 분야별로 직종별로 분류해가며 감쪽같이 체크하는 낌새다. 오죽했으면 고인과 교류가 많았던 서승돈까지 얼굴을 비치지 못했을까.

물론 서승돈을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이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전 야당 총수는 아직 영국에서 귀국하지 못했으므로 거론할 여지도 없었지만, 평소 박상길과 가깝게 지냈던 비 정치권 지우들조차 쉬쉬하며 발길을 끊은 것은 야박한 세태를 탓하기 전에 당국의 탄압이 그만큼 극악에 달했다고 해야 옳다.

어디 지우들 뿐인가. 소위 말하는 운동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는 태껸이며, 태권도 유단자 선후배 들 조차 이름 깨나 날리는 지도자급은 눈을 씻고 봐도 그 자취를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