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의 8·15 사면·감형 및 복권 심의를 통해 자신의 측근인 안희정씨, 신계륜 전 의원, 여택수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특별사면·복권시켰다.


 지난 2002년 불법 대선자금을 챙긴 이들이 특사 대상으로 거론될 때부터 대통령의 사면권 오·남용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불법 대선자금은 개인 비리가 아니라 과거 정치관행에 따른 문제'라는 논리를 내세워 끝내 밀어붙인 것이다.
 노 대통령이 스스로 `정치적 동업자'라고 부른 안씨,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비서실장직을 맡겼던 신 전 의원, 대통령 집무실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던 여씨인 만큼 이들에 대한 사면은 곧 `코드사면'이다. 이번 사면을 놓고 명명하는 이름조차 가지각색이다. `은전베풀기 사면', `제식구 빼돌리기식 특별사면', `막판떨이 특별사면', `측근 구하기 사면' 등등. 참여정부 3년반 동안의 집권 기간 중 이번까지 무려 여섯번의 은전을 베푼 셈이다.


 이로써 노 대통령의 측근 인사 중에는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제외하면 모두 법의 굴레에서 해방된 셈이다. 그중에는 재판이 끝난 지 6개월도 안된 사람도 있다. 작년 이맘때는 불법대선자금 관련 경제인을 사면한다면서 노 대통령의 측근이며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끼워넣는 촌극을 벌인 일도 있다. 강씨는 횡령 조세포탈 등 개인 비리로 유죄가 선고된 상태였다.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야당 인사들이 몇명 포함되는 것은 구색 갖추기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경제계와의 화해를 위해 여당에서 그렇게 간청했던 기업인들은 이번 사면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래서 김근태 당의장의 뉴딜을 청와대가 짓밟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이렇듯 측근 사면을 관철한 배경이 궁금하다. 여당의 서운함, 야당의 비난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까지 측근들에 대해 특별 사면을 단행한 것은 그만큼 절박한 정치적 필요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와관련 정치권 안팎에서는 돌아온 측근들이 노 대통령의 향후 정국 설계도를 완성시킬 주역이라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좌(左)희정' 안씨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별 사면 이전부터 안씨는 부산한 행보를 보였다. 의정연 멤버들과 유럽을 방문해서는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 설계에 참여했다. 또한 주눅 든 노사모 재건을 위한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영화관에서 있었던 시사회에 참석,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 명계남 전 노사모 대표,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원조 노사모 멤버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안씨가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한 명과 자주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관련 신 전 의원이 최근 `고 건은 우리 사람'이라며 광폭 행보를 보이는 것도 관심거리다. 지난번 청와대 당·청회의에서 노 대통령이 밝힌 `외부선장론'과 연계할 수 있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신 전 의원은 다음달 2일 1천여명이 가입한 팬클럽 창립총회를 갖기로 했다. 이 팬클럽에는 고건 전 총리를 비롯한 범여권 인사들과 함께 일부 한나라당 인사들까지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친노성향 그룹들이 일제히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는 것도 주목거리다. 노 대통령을 지원하는 핵심 개혁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는 2기 출범을 앞두고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고 우리당 당원이 아닌 사람에게도 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등 외연 확대에 나서고 있다. 또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 등이 결성한 ‘국민참여 1219’는 ‘1219 포럼’이라는 단체를 결성, 16일 창립식을 가진 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 노 대통령의 측근들을 초청해 릴레이 강연회를 가질 예정이다.


 측근들의 사면과 함께 노 대통령 친위세력들의 동선이 갑자기 활발해진 것이다. 코드사면이라는 시비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측근들의 사면을 강행한 배경을 읽을 수 있는 의미있는 동선들인 셈이다.
 결국 노 대통령은 향후 정국에서 결코 소외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모든 정치 현안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 측근 사면 복권이라는 포석을 둔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정계개편과 차기 대선주자 확정 과정에서 이들은 대통령의 복심을 정치 현장에 풀어놓는 전령사 역할을 맡을게 확실하다. 노 대통령은 코드사면이라는 잠깐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향후 정국을 주도하며 참여정부 이후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이들을 풀어놓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