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 물을 먹은 자, 나일강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라는 이집트 속담이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을 연결하는 지중해와 홍해 사이에 자리잡은 이집트는 앞의 속담과 같이 이집트를 거쳐간 여행자를 다시 불러올 정도로, 다양한 매력과 불가사의한 신비로움을 간직한 나라임은 분명하다.

이집트 하면 흔히들 나일강의 기적과 불가사의한 나라, 4대 인류문명의 발상지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흔히 사람들은 피라미드, 스핑크스, 파라오, 투탕카맨, 람세스 2세, 클레오파트라, 신전 등 역사적인 코드를 연상한다. 5천년이라는 세월의 역사와 히스토리, 방대한 스케일이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둘러싸인 이집트는 또한 아름다운 상형문자 히에로클리프(hieroglyph)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원래 인간은 손가락을 움직여서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예로서 동굴벽화라든지 돌이나 점토판 따위에 새긴 그림 등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림은 결국 그림에 불과할 뿐이며 문자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문자를 쓰기 시작한 것은 간단한 도형이나 매듭 등 일정한 약속으로서 어떤 사실을 표시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추측된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그림문자’. 이집트 히에로글리프 역시 전형적인 그림문자라 할 수 있다.

취재진이 방문했던 이집트 남부 룩소르의 왕들의 계곡과 이집트 신전의 벽, 무덤의 내벽에는 여지없이 온갖 형형색색의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어 고대 이집트의 수많은 신들을 칭송하고 있었다. 이집트인은 토트신이 문자를 발명하여 인간에게 선물로 주었으며, 상형문자는 신의 계시로 만들어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문자는 일반인들이 알아볼 수도, 쓸 수도 없게끔 성스럽게 표현되었다.

이집트 문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문자의 수가 거의 외울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이집트 문자의 초기 형태를 보면 문자 그 자체가 언어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문자체계를 표어문자(表語文字, 한 문자가 하나의 단어가 되는 문자)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집트 문자는 원래 1어 1자가 원칙이었으므로 말(단어)이 있는 한, 문자의 수는 계속 증가했다. 따라서 이집트 문자체계의 경우 원래는 표어문자지만 사실은 표의문자(表意文字, 하나하나의 글자가 언어의 음과 상관없이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문자)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집트 문자는 일반인들이 배울 수 없을 정도로 문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우선 인간의 생활 주변에 있는 물건, 즉 자연현상, 동식물, 의식주에 관한 것에서부터 생겨난 이 상형문자는 사용인구가 조금씩 늘어나자 단순히 사건의 경과라든지 의지, 명령 따위의 전달만을 기록하는 것 외에 추상적인 사상이나 개념을 표시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그림문자의 배후에 있는 의미, 예를 들면 발이라는 그림문자가 `명사 발'과 `동사 서다'라는 두개의 의미를 나타내도록 했다. 이 단계에서 한편으로는 기록이 충실히 진행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자의 수가 늘어나고 문자를 기억하는 일이 불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생겨났다. 또 상형문자를 읽으려면 많은 수의 기호를 알고 있어야 했기에 대중교육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암기해야 할 기호의 숫자와 상형문자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수련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집트 스승의 교육방식은 쓰기, 읽기를 통한 암기였다.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소리 내어 문자를 읽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문자의 생명인 `기록기능'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파피루스에 상형문자를 그리는 것은 상당한 기술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토록 정교한 기호를 이용하여 글씨를 쓴다는 것은 일상생활에는 적절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빨리 해야 하는 일을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문자의 양대기능인 대중교육과 기록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지 못한 셈이다.

결국 이집트 상형문자는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진화에 실패, 진정한 알파벳에 이르지 못했다. 이른바 학자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상형문자가 맨 마지막으로 새겨진 것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통치하던 394년 8월24일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로부터 2세기도 지나지 않은 551년 `이집트의 경이'라고 불리는, 이집트 남단의 필레 신전마저 폐쇄되고 말았다. 처음 상형문자는 모두 750개 정도였다. 그 기본적인 체계는 처음 태어난 모습 그대로 어떠한 변형도 겪지 않았다. 마지막 신전이었던 필레사원이 폐쇄될 때까지 상형문자들의 모양은 한결 같았다. 전무후무한 일이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가 멸망한 뒤 상형문자의 사용은 그리스와 아라비아의 문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1822년 샹폴리옹 덕분에 다시 살아나 오늘날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되고 있다. 또, 우리 한글이 나아가야 할 바를 알려주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돼주고 있기도 함은 물론이다.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