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여기 참이슬(혹은 처음처럼) 한병 더 주세요.”
 “손님, 처음처럼으로 드릴까요, 참이슬로 드릴까요?”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누구나 수십번, 수백번은 들어본 말이다. 손님이나 주인이나 그냥 `소주'가 아니라 꼭 제품의 이름을 찾는다. 어느 이름을 대느냐에 따라 소주 제조회사의 희비가 엇갈린다.
 이처럼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영원한 술친구' 소주를 두고 진로와 두산간의 `소주 전쟁'이 올 여름을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20년 총성없는 전쟁'에서 과연 누가 웃을지 관심의 대상이다.

 소주시장은 그동안 진로가 주도해왔다. 그러나 올들어 두산 신제품 `처음처럼'이 소주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부동의 1위 업체인 진로에 비상이 걸렸다. 드디어 진로는 맞대응 차원에서 신제품을 전격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하반기 소주시장은 판매량 1위 제품인 진로의 `참이슬'과, 두산의 저알콜 도수 신제품 `처음처럼'이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신제품이 더해지는 점입가경의 소주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진로는 이달내에 알코올 도수를 20도 미만으로 낮춘 신제품을 출시한다. 신제품은 알코올 도수가 19~20도 사이의 저알코올 소주다. 진로가 20도 미만의 순한 소주를 시장에 내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진로가 이처럼 파격적으로 알코올 도수를 낮춘 제품을 내놓기로 한 것은 최근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두산 `처음처럼'의 기세를 꺾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산주류는 진로가 알코올 도수 20도인 `처음처럼'보다 순한 소주를 내놓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자 신제품 사양 및 마케팅 전략 파악에 나서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두산은 올해 2월 `처음처럼'을 출시한 이래 소주시장에서 점유율을 상반기에 7.9%(420만 상자)까지 회복했으며, 현재 월 시장 점유율이 10%대에 육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도면 양쪽이 생사를 놓고 싸우는 `진검승부'라 할만 하다.


 ▲CEO 대결
 지난 6월말 진로에 주목할 만한 인사가 있었다. 하이트맥주의 영남지역 영업을 진두지휘해오던 윤기로 전무가 진로의 영업지원담당 임원에 선임된 것이다.
 윤 전무는 하이트맥주가 영남 맥주시장의 맹주로 자리잡게 한 공신. 하이트맥주그룹은 그를 통해 영남지역에서 대대적인 참이슬 영업을 펴고 있다. 진로가 영업의 무게 중심을 서울, 수도권에서 영남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두산 소주 `처음처럼'의 기세가 너무 강해 전투 지역을 이동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기선(55) 두산 사장과 하진홍(57) 진로 사장은 이렇게 소주 시장에서 물러설 수 없는 두뇌승부를 펼치고 있다. 양 사령관은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최근에는 한 사장이 지휘봉을 잡은 두산이 `처음처럼'을 앞세워 하 사장이 사령탑을 맡은 진로(참이슬)를 맹추격하고 있는 모양새다.
 진로 하 사장은 소주시장에서 `처음처럼' 점유율이 계속 높아지면서 자사 제품인 `참이슬'의 점유율이 2월 55.3%에서 6월에 50.3%(20도 기준 49.5%)까지 밀려나자 전 임직원을 향해 수시로 영업지원 활동에 나서도록 강력히 독려하고 나섰다.

 하 사장은 지난 72년 하이트맥주 전신인 조선맥주에 입사해 생산담당 사장 및 진로 인수기획단장을 거쳐 지난해 10월 진로의 사령탑을 맡은 전문경영인이다. 하 사장은 진로의 지휘봉을 잡은 뒤 `참이슬'의 계속된 판매 호조에 힘입어 소주시장을 선도하는 CEO로서 입지를 굳건히 다져왔다.
 그러나 최근 두산의 `처음처럼' 점유율이 10%에 육박하는 반면 진로의 `참이슬'은 올해 상반기에만 5%포인트나 하락하는 등 위기상황에 내몰리면서 하 사장이 난관에 봉착했다. 하 사장이 전 임직원의 `영업맨화'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위기의식에서다.
 하 사장은 이와관련, 두산의 한 사장을 비롯한 진로 출신의 두산 임직원들이 진로의 영업 및 마케팅 방식을 견제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이를 역이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집중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의 한 사장도 발걸음이 무척 빨라졌다. 이같은 여세를 몰아 올해 전국 시장 15%, 서울·경기 등 수도권 25%의 점유율을 차지한다는 각오다.
 진로 영업담당 부사장까지 지낸 한 사장은 회사가 법정관리 직전인 지난 2002년 OB맥주 영업담당 수석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 2004년엔 다시 두산의 주류 부문 마케팅담당 부사장으로 소주업계에 컴백한 뒤 지난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CEO다.
 한 사장은 두산 합류과정에서 진로 출신 전문인력 상당수를 두산으로 영입했다. `처음처럼' 홍보활동도 두산이 아닌 진로 홍보 중역 출신이 세운 홍보대행사에 맡겼다. 진로의 전·현직 중역이 각각 두산과 진로의 편에 서서 소주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양새다. 소주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두산 한 사장과 맥주시장에서 하이트 신화를 창조한 진로 하 사장 간의 `건곤일척' 승부가 누구의 승리로 결론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녀모델 대결
 진로와 두산은 광고에서도 한치의 양보없는 대결을 하고 있다. 양사는 84년생 동갑내기 미녀 탤런트 이영아와 남상미를 모델로 내세워 대리전을 벌이고 있다.
 복두꺼비송을 부르며 귀여운 매력을 발산하는 `참이슬'의 남상미, 그리고 얼마전 종영한 MBC `사랑은 아무도 못말려'의 철부지 며느리로 인기를 끈 `처음처럼'의 이영아.
 남상미는 지난 2월 진로가 20.1도의 리뉴얼 참이슬 제품 모델로 전격 발탁했다. 동영상 광고에서 남상미는 처음에는 얌전을 떨다 주위의 요청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더니 능청스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때 부른 노래가 진로의 트레이드 마크인 `복두꺼비송'이다.

 이영아는 `처음처럼'의 신비롭고 건강한 이미지 전략에 앞장서고 있다. 광고를 제작한 오리콤측 관계자는 “모델이 술을 권하는 기존의 흔한 포즈들은 배제하고 신예 이영아의 순수하고 밝은 깨끗한 이미지를 최대한 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남상미와 이영아가 소주 모델을 같이 하면서 묘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남상미와 이영아 둘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돼 회사에 승리를 안겨줄지 소주업계는 물론 방송계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알코올 도수 전쟁
 두산의 `처음처럼'이 출시 5개월만에 1억병을 돌파하자 진로도 지난 2월 20.1도 참이슬을 내놓은지 6개월만에 알코올 도수 19.5~19.8도 사이의 새 제품을 이달중 출시하기로 했다. 우리나라 소주시장에서 20도 미만의 소주가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주당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주가 1973년 처음 25도에 진입한 이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데 33년이 걸린 셈이다.
 소주 20도 미만 시대의 의미는 참살이(웰빙) 추세와도 맥을 같이한다.
 진로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음주 트렌드가 해가 갈수록 저도화 되고 있다. 가급적 술을 마시고도 다음날 아침 부담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요즘 소비자들의 바람이다”라며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과 맞물려 최대한 몸에 덜 해로운 술을 소비자들이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술 소비자층으로서는 마지막 시장으로 여겨지는 여성 음주자들의 증가도 도수를 낮추는데 한몫했다. 여성들이 술을 찾는 빈도와 양은 늘어가지만 이들은 독주보다는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을 더 선호하므로 소주업계는 당연히 그런 쪽으로 나갈 방향을 잡았다.
 다음으로는 신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젊은 세대의 술문화 패턴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40대 이상 연령층이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는 것이 상례였다면 요즘 20, 30대는 가볍게 술을 마시는 것을 더 좋아한다. 때문에 도수가 낮은 술은 이제 시대의 대세다.

 시장 점유율에서 드러나고 있듯 20도 미만의 소주 출현은 소주 시장에서의 또 다른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한 마디로 두산이 `20도대 소주 전선'을 먼저 형성하면서 진로에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두산은 지금까지의 시장 성적표는 21도 이상 소주 시장에서의 결과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처럼'으로 20도대 시장판도를 형성해 나가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20도대 소주' 신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두 회사간의 신경전은 이미 출고 때부터 벌어졌다. 제품 등록과 출고, 광고, 홍보 등에서 두 회사는 모두 하루 차이로 접전을 치르며 양보할 수 없는 라이벌임을 과시했다.
 국세청에 제품 등록을 하고 출고를 먼저 시작한 것은 두산이다. 불과 하루 차이로 선수를 빼앗긴 진로는 하지만 보도자료 배포와 광고에서는 주도권을 뺏었다.

 그러자 두산은 가격에서 포격을 감행했다. 명분은 알코올 도수가 내려간 만큼 가격을 인하했다는 것이다. 종전보다 병당 70원(소비자가 기준)을 내렸다. 이중 50원은 소비자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고 20원은 유통업자 몫이다. 하지만 진로는 단순한 마케팅 전략일 뿐 시장에 변화를 줄 변수는 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며 소주시장 장악을 노리는 진로와 두산, 두 회사간의 소주 전쟁은 당분간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혈전이 전개될 태세다. 과연 신은 어느 회사의 손을 들어줄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