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원 지동시장

 수원 지동시장을 갈때 밥을 먹고 가면 바보?
 재래시장에는 원래부터 먹을 것이 많다. 시장 구석에서 찬거리를 사면서 한두개씩 집어먹는 어묵이며, 구수한 냄새 풀풀 풍기는 순대와 족발이며, 찬바람 불때 뜨끈하게 한그릇 뚝딱 해치우는 국밥이며….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아 혓바닥이 동동 떠다니는(?) 기분이다. 그중에서도 지동시장은 전국적으로 소문난 `지동순대'의 본거지다.

 수원 토박이들은 대충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을 전후해 지동순대의 맛에 `퐁당' 빠져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다닐때부터 지동순대에 약간의 알코올(?)을 즐겼다고 뒤늦게 고백을 하기도 한다. 그게 재래시장의 추억이 아닐까?

 지난 30일 모처럼 지동순대의 맛을 보기 위해 저녁 마감을 끝내고 지동시장을 찾았다. 대리운전을 각오하고 차를 몰고 갔다.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지동시장은 대단한 주차시설을 갖고 있다. 지동시장과 영동시장 고객들을 위한 노상주차장과 초현대식 `팔달문 주차장'을 합쳐 주차대수만 500여대. 대형할인점 부럽지 않다. 저녁에 가니 노상주차장도 한결 여유가 있다. 주차비는 30분까지는 900원이며 이후는 10분당 400원이다. 두시간쯤 차를 대면 주차요금 2천원쯤. 그정도면 주차요금에 목을 맬 필요가 없겠지.

 저녁을 안먹었지만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 몇가지 장을 먼저 봤다. 팔달주차장에서 쭈~욱 들어가는 길이 모두 야채며 생선을 파는 점포들이다. 잊지 않고 먼저 튀김을 몇개 해치운다. 장 보려면 배고프니까. 시장판에서 사먹는 튀김 맛은 정말 `꿀맛'이다. 백화점 스넥코너에서 파는 튀김맛이 이럴까. 배부르도록 먹고 싶지만 순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침을 삼키며 참기로 했다.

 생선가게에서는 상인들과 아주머니들 사이에 흥정이 한창이다.
 “아줌마 2천원밖에 안남았어요. 그냥 2천원에 줘요.”
 “아이, 그렇게 주면 우리 손해야. 이 더위에 파는 사람 생각도 해줘야지. 다음에 오면 한마리 더 줄게.”
 요새 장사가 안된다고 힘이 빠져있던 아주머니가 손님을 받을때면 갑자기 힘이 넘친다. 동태를 `퍽퍽' 자르는 칼이 무시무시하다.

 모퉁이를 돌아 다리께에는 족히 일흔은 돼보이는 꼬부랑 할머니께서 손바닥만한 노점을 벌여놓았다. 손수 캐오고 따온 고구마랑 고추랑 대여섯가지 야채들이 초라하다. 하지만 그 야채들에 할머니의 정성이 담뿍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고구마 2천원어치를 샀다. 듬성듬성한 이를 드러내며 고마워하는 할머니를 보니 기분이 뿌듯해 진다.
 지동시장 사무소를 한번 들러보았다. 그래도 탐방기를 쓰려면 지동시장의 역사라도 좀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송병태 수석 부회장이 반갑게 맞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광고'를 한다.
 송 부회장 설명에 따르면 지동시장은 1951년 상설시장으로 개장해 5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 화성(華城)의 남쪽 팔달문을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지금은 화성을 찾는 수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명물이 됐다.

 재래시장이라는 `묵은 때'를 벗기 위해 지난 2002년에는 시·도비 지원으로 도시가스, 환기닥트공사, 간판정비, 타일공사가 완료됐고, 2004년 상반기 국비보조사업으로 냉방공사, 저층 리모델링, 차량용 승강기를 교체했다. 작년에는 유명한 화성형 외벽공사를 마치고 아케이드를 설치했다. 또 콜 센터와 공동배송시스템, 홈페이지 구축 등으로 `초현대식 재래시장(?)'의 면모를 갖췄다. 지금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재래시장이라고 송 부회장은 자랑이 대단하다.

 최극렬 지동시장 상인연합회 회장은 “지동시장은 1984년에 입점 상인 100명이 1인당 1계좌씩 총 100계좌를 만들어 시장운영권을 인수해 지금까지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상인들이 어려움을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던 것이 지동시장이 다른 시장보다 잘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동시장은 또 다른 재래시장과는 다르게 콜센터(1577-7025)를 운영하고 있다. 바쁜 직장 생활 등으로 재래시장에 나올 수 없는 고객들은 전화로 주문하면 상담원이 해당 점포를 연결해준다. 3만원 이상 구입시 수원시내 어디든 공짜로 배송서비스를 해주고 있다.

 지동시장의 주 메뉴(?)는 농·축·수산물이다. 특히 순대는 지동시장의 마스코트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순대는 자유당시절에도 세집이나 장사를 할 정도로 역사가 깊다. 지금은 40여곳에서 순대를 팔고 있다.
 꽤나 역사가 깊어 단골이 많은 M왕순대를 찾았다. 기자도 단골 중 한명이다.
 순대를 먹던 김희정(32·권선동)씨는 “지동시장의 순대맛은 전국에서 최고”라며 지동순대 예찬론을 펼친다.

 왁짜한 분위기에 취해 순대에 소주를 한잔 맛깔스럽게 걸치고 나오니 선선한 밤 바람이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준다. 이 맛에 재래시장을 오는게 아닌가. 집에 가기가 싫다. 마냥 시장을 거닐며 이밤을 보내고 싶다. 한쪽에서는 슬슬 가게문을 닫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바쁘다. 이제 집에 가야지. 아쉬움을 남기며 대리운전을 부른다. 너무 빨리 온 대리운전기사가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