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필경사(筆耕士)들은 진흙판에 한쪽 끝이 뾰족한 갈대를 이용하여 신에 대한 찬송, 고대의 예언, 문학자료 등을 오랜 시간에 걸쳐 열심히 `그려'넣곤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이 쓴 문자를 읽어내는 것은 당시에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호를 쓸줄 아는 사람, 그리고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기호의 의미를 모두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기술이었다. 이 때문에 바빌로니아나 아시리아의 필경사는 독립된 계급을 형성했고, 때로는 글자를 모르는 궁신이나 심지어 왕보다도 더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들이 쓴 그림(문자)들은 주로 쐐기 꼴을 하고 있었는데, 이 특징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문자를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 쐐기문자)라고 부른다.


 설형문자는 문자를 발견한 수메르인의 언어 뿐 아니라 다른 언어들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수도를 수사(오늘날의 이란)에 두고 있던 엘람인이 사용한 엘람어도 설형문자로 기록되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BC 1400~1200년에 강성한 문화를 형성했던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터키)의 히타이트족도 설형문자를 채택하여 널리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명된 설형문자 체계는 BC 3000~BC 1000년에 남쪽으로는 팔레스타인, 북쪽으로는 아르메니아까지 전파되었다. 특히 아르메니아 지역에서는 카난어와 우라르티아어를 기록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중동지역의 여러 부족국가들이 설형문자 체계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후세의 역사가들은 이 시대의 역사적 비밀을 파헤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설형문자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현재 설형문자를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한 군데도 없다. 역사속에 완전히 묻힌 셈이다. 취재진이 방문한 에블라(Ebla)에도 수메르 문자의 자취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에블라는 BC 2700년~BC 2240년까지 시리아의 알레포 남서쪽 53km 지점에 있었던 고대 도시국가다. 1970년대 중반에 설형문자가 새겨진 점토판과 문서가 에블라에서만 1만5천개 정도가 발굴될 정도로 한때 설형문자가 그 시대의 문명·문화를 장악하던 곳이었건만 설형문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페허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사실 에블라 자체가 페허의 현장이었다. BC 2240년경 아카드 왕조의 나람 신이라는 왕이 쳐들어와 에블라를 짓밟고는 에블라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이때 발생한 대화재로 에블라의 도시는 자취를 감춰버렸고, 그 후 아모리족이 에블라를 약탈하여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다. 하지만 역사는 아이러니를 곧잘 낳곤 한다. 당시의 화재로 설형문자가 적힌 많은 점토판 문서는 그 뜨거운 열기에 오히려 단단히 굳어졌고, 이 때문에 후일 어느 고고학자의 손에 발견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방문한 시리아 팔미라(Palmyra)도 마찬가지로 허허벌판과 다름없었다. 원래 팔미라는 솔로몬이 오론테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중간의 시리아 광야에 있는 종려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에 세운 도시였다. 이곳에서 발견된 BC 19~18세기 설형문자 비문들은 이때 이미 사람이 거주했음을 말하고 있다. 팔미라는 오데나투스와 그의 미망인인 제노비아 치하에서 명성과 번영을 누렸으나 270년 아우렐리우스에게 패배한 후 272년에 함락되어 로마에 합병됐고 그후 유스티니아누스에 의해 요새화되었다가 7세기에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멸망됐다고 한다.

▲ 눈앞에 펼쳐진 죽은도시. 에블라-사멸한 설형문자의 고독과 침묵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처럼 이집트와는 달리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장기간에 걸친 격동하는 역사의 전체 과정동안 끊임없이 내적인 압력과 외적인 압력을 받았다. 그러던 BC 330년에 알렉산더가 아시아로 원정했을 때 그때까지 존재한 모든 문화적인 패권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때에 이르러 설형문자도 그보다 더 단순한 그리스문자에게 그 지위를 빼앗기기 시작했다. 결국 13세기에 또다른 정복자 칭기즈칸의 군대가 사회체계를 파괴해 버리자 일찍이 비옥했던 문화는 불모의 사막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하여 취재진은, 한때 영화를 누렸던 설형문자의 발상지에서 조차도 설형문자를 다마스커스 국립박물관과 팔미라 박물관 등 박물관 유리창 안에서만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 팔미라-정복자들은 이 고장에다가 졸병급 문명의 자취를 찍어놓았고, 그와중에 설형문자는 이곳에서 일어났다가 스러졌다.
 설형문자의 운명을 살펴보면 우리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문자사용이 단절되거나 보전되는 것은 그 문자가 한 언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 문자를 사용하는 문화들의 힘과 특권, 그리고 생명력이 가장 큰 요인이다. 그래서 이라크인과 이집트인은 오늘날 아랍문자를 사용하는 것이고 일본인들은 한자를 차용(借用)한 가나문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서구(그리고 영어)문화의 지배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모든 나라에서 자신들의 문자를 ‘로마화’하자는 요구들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일이 이를테면 이집트나 일본에서 일어나는 것을 상상해봄 직도 하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예를 들어, 미국이 아랍문자로 전향하는 것-를 상상해보면, 어떤 문자가 특정문자를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한글을 외면한 채 벌이는 ‘영어 공용어’논란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리아 에블라, 팔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