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사랑 ③

원유 도입선, 정유 시설, 판매 조직 등등 업자의 능력 역시 까다롭게 체크하지 않을 수 없고, 설사 그 모든 능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수급량이 원활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통과될 수 없고, 또 요행히 그것까지 다 해결되었다 해도, 기존 업자들의 모임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그 순간으로 또 한 번 낙동강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유업계 신규 진출을 두고 낙타가 바늘귀 지나기만큼 어렵다는 얘기도 그런 배경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해야 옳은 터다. 다시 말해 정유업 인허가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기실 홍영호도 해방 전부터 그 업종에 투신, 30년 가까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전력투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남강정유가 존재할 리 만무하다. 물론 처음에야 드럼통 싣고 다니며 전기 없는 두메산골 가가호호까지 방문, 이름 그대로 병 석유 파는 일부터 시작한 터지만, 그 소매업이 발판이 되어 흡사 굼벵이 재주 넘듯 한 계단 두 계단 시나브로 발전하여 오늘날 정유업계의 숨은 실력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있다. 대체로 한 업종에서 성공을 거두면 문어 다리 늘어뜨리듯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타업종에 투자하기 일쑤인데도 홍영호 회장은 옆 눈길 한 번 주는 법 없이 오로지 정유업에만 심혈을 다 바쳐 온 터다.

어디 그뿐인가. 해방과 6·25와 그리고 군사 정권을 거쳐 오면서 얼마나 많은 한량들이 정치권 거물이며, 군부 실력자며, 직업 브로커를 앞세워 아무 연고 없이 사업체 인허가를 독식하곤 했던가.

특히 석유 에너지 사업이 더 그러하다. 이른바 정경 유착이라고 하던가. 군사 정권 최고 권력자의 개인 금고에 막대한 금액을 일시불로 헌납하고, 석유의 석 자도 모르던 사람이 정부 인허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에너지 개발 육성 자금까지 독식, 하루 아침에 정유업계의 기린아로 등장한 얌체성 재계 인사가 몇 명이던가.

하나 홍영호의 경우는 아직 한 번도 정치권 가까이 접근해 본 적 없고, 스스로 정치 자금을 들고 최고 권력자 집무실을 제 발로 걸어들어간 역사가 없다. 좋은 의미로 해석해서 심지가 대쪽처럼 곧은 사람이고, 그 반대 개념으로 말하자면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숙맥 기업가인 것이다.

어찌 보면 영림그룹의 김상도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 바로 홍영호인지도 모른다. 계산상 홍영호가 김상도보다 두서너 배 앞선 업계의 선배인데도 홍영호는 오로지 남강정유 하나뿐이지만, 김상도의 경우는 전자, 자동차, 중공업, 건설, 식품 등등 무려 40개 가까운 계열사를 거느린 대그룹 총수로 군림한 터다.

어쨌거나 남강정유는 한 번도 권력층의 비호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순수 민간 기업의 선두주자이며 유일하게 석유의 맥을 이어 온, 이른바 가장 오래된 전통의 정유 회사인 것이다. 김상도도 그런 빛나는 전통을 누구보다 앞서 인정하는 터고, 그래서 가능하면 남강정유 제품을 선별 애용하는 편이다.

아니, 그런 면에서 헤아리건대 오히려 홍영호가 김상도 쪽에 오랫동안 베풀어 왔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왜냐하면 한때 석유 제품이 달려 현찰을 주고도 살 수 없을 때 김상도의 영림그룹에 우선 배정했던 사람도 홍영호고 그보다 더 멀리 거슬러 올라가 초창기 사업 자금이 달렸을 때 선뜻 영림그룹 계좌로 거액을 주선, 입금시켰던 사람 역시 홍영호인 것이다.

내력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영림그룹에 있어서 남강정유는 뗄려야 뗄 수 없는 그야말로 은사를 입히고 입은 우정의 관계라고 해야 옳다. 그래서 비교적 잦은 개인적인 교유를 갖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