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트만 박사는 아르헨티나계 유대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히브리 문자를 쓰지도 못하고 뜻도 몰랐지만, 히브리 문자를 소리내어 읽을 줄은 알았다고 말했다. 바로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어릴적 아버지는 내게 (유대교) 기도문을 읽도록 항상 시키곤 하셨습니다. 바로 그 기도문이 히브리 문자로 쓰여져 있었죠. 어릴적부터 받은 훈련으로 사실 뜻도 모른채 기계적으로 읽기만 했지만, 그것이 나를 포함한 유대인 어린이들에게 정체성을 심어준 것은 확실합니다.”
그는 로마에 의해 국가를 빼앗기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성전과 왕도 없이 히브리어를 지킨 것은 유대인의 언어 자체가 유대교로 대표되는 ‘유대 정체성’을 담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히브리어는 지역적인 중심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각 디아스포라(Diaspora·이스라엘 지역 바깥으로 흩어진 유대인 공동체) 구성원들은 히브리어를 통해 유대인을 ‘만들어’냈습니다. 히브리어가 민족을 유지시키는 주요 역할(Key role)을 담당했던 셈이죠.”
실제로 BC3~AD1세기 중반까지 고대 히브리어로 쓰인 문서 대부분은 종교문서였으며 그 대표격인 사해문서의 경우 80%가 히브리어, 15%가 아람어, 4~5%만이 그리스어로 이뤄져 있다고 로이트만 박사는 설명했다. “이는 중요한 점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히브리어가 그 당시를 지배하는 외국 문물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하죠. 바로 히브리어 자체가 유대인들을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히브리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