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에서도 윤기가 느껴지는 초가을의 어느 날. 강원도 봉평으로 메밀꽃 여행을 떠난다. 둥실둥실 떠오른 밝은 달빛 아래 펼쳐진 하얀 메밀꽃 천지에서 오랫동안 잊지 못할 초가을 밤의 꿈에 취해본다.

 메밀꽃이 피는 9월 중순이면 작은 시골 마을인 봉평면은 들썩이기 시작한다. 9월 중순경 만개하는 메밀꽃은 이미 봉평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있다.
 메밀꽃여행은 읍내에 서는 봉평장에서 시작한다. 2, 7에 열리는 봉평장은 아직도 시골장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여기저기 참견도 하고 떠들썩하게 흥정도 한판 벌여보고 나서 발걸음을 효석문화마을로 돌린다. 장터에서 개울을 건너면 가느다란 소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다. 바로 옆에 크고 튼튼한 콘크리트 다리도 있지만 아슬아슬해 보이는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1만5천여 평의 메밀 꽃밭이 있고 건너편에 나귀 우리가 있다. 크고 맑은 눈으로 빼꼼하게 우리 밖을 내다보는 당나귀 얼굴에 웃음이 절로 번진다. 작대기로 등을 긁어주니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당나귀 목에 걸린 방울 소리가 메밀밭으로 흘러든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사귀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의 걸음도 시원하다.”

 가산(可山)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 이곳은 그의 소설대로 이곳저곳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소설의 무대에 오게 된 것을 실감하게 된다. 메밀꽃뿐인가? 지금도 봉평에서 장평으로 가는 길에는 허생원이 헐떡거리며 넘던 노루목이 남아 있고, 동이의 등에 업혀 건너던 장평냇물이 흐르고 있다. 또한 실존 인물이라고도 하는 허생원이 살았던 집과 봉평장터의 주막 충주집,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하룻밤 짧은 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 당나귀를 가둔 외양간 등이 복원돼 있다.
 봉평중학교 앞 이효석의 호를 딴 가산공원에는 이효석의 흉상과 문학비 그리고 복원한 충주집이 세워져 있다. 문학비에는 `효석의 인생은 짧았지만 그 짧은 인생 속에 남긴 문학은 조선의 언어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쓰여 있다.

 가산공원을 조금 지나면 이효석이 어릴 때 물장구치며 놀았을 법한 흥정천이 나온다. 흥정천을 가로지르는 남안교 옆에는 솔가지를 엮은 상판에 흙을 덮은 섶다리를 놓아 옛 정취를 살렸다. 흐드러진 메밀꽃밭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물레방앗간과 이효석 생가 주변에 7만여평에 달하는 메밀 꽃밭이 그야말로 `소금을 뿌린 듯' 하다.

 여행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물레방앗간. 얽둑빼기 장돌뱅이 허생원이 봉평 장날 여름밤, 메밀꽃 흐드러진 개울가로 목욕하러 나왔다가 제일 일색 성서방네 처녀를 만나 예기치 못했던 정분을 나누던 그 방앗간이다.
 “목욕하러 나갔지. 개울가가 어디없이 하얀 꽃이야. 달이 너무 밝아 옷 벗으러 물방앗간에 들어갔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팔자에 있었나부지.”

 물레방앗간에서 약 1.5㎞쯤 더 올라가면 이효석의 생가터가 있다. 생가터에 남아있는 집 주인은 이효석과는 관계가 없는 이인데 오래 전 그의 조부가 이효석의 부친으로부터 집을 사들였다고 한다. 초가지붕이 양철지붕으로 바뀌고 생가 곁에는 황토집을 짓고 메밀음식과 전통차를 판다. 생가터 가는 길목 야산에는 이효석 선생의 유물을 모아 전시한 효석문학관이 있는데 이효석의 대표작품의 연보와 육필원고, 생전에 사용했던 안경, 잉크병, 책상 등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인 무이예술관 주변도 메밀꽃 천지다. 2001년 다섯 명의 화가들이 폐교된 무이초등학교를 활용해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도자기, 서예, 조각, 서양화가 등의 작업실을 볼 수 있으며 운동장은 조각공원으로 꾸몄다.

 ‘소금을 뿌려놓은 듯 새하얀 메밀꽃’의 정취를 스쳐 지나가듯 구경하기는 아까운 풍경이다. 눈처럼 하얗게 들판을 덮은 메밀꽃 사이를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사색에 취해보자. 어느새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온 풍경을 실감하며 오랫동안 가을들판의 낭만에 취해보는 것도 특별함 감흥일터.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함박웃음이 터지는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가을여행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달 그리고 환상적인 잣나무 숲과 메밀꽃밭이 ‘한여름 밤의 꿈’처럼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반짝거릴 것만 같다.

 ◇여행수첩
 ▲가는 길=영동고속도로 면온IC로 나와 봉평 방향 6번 국도를 타고 봉평면으로 진입하면 된다. 봉평 장터를 지나면 메밀꽃 세상이 곧바로 펼쳐진다.

 ▲맛집=봉평하면 메밀음식이 으뜸. 춘천에서 먹던 것과 다른 메밀국수를 맛볼 수 있다. 물레방앗간 맞은편에 있는 고향막국수(033-336-1211)는 봉평의 원조격 막국수집이다. 과일과 채소로 개운하게 국물을 낸 막국수와 입에 착착 달라붙는 메밀묵사발, 김치 만두소를 넣은 메밀전병이 특히 맛있다. 막국수 4천원, 메밀전병 5천원.

 ▲잠자리=봉평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휘닉스파크(02-508-3400) 패키지를 이용하면 좋다. 리조트 내의 특급호텔에서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젠 스타일로 꾸며놓은 테마객실을 이용할 수도 있으며 수영장과 레저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 로하스패키지 10만~15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