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제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것 하나만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꼽을 것이다. 간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국보 1호로 새롭게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것도 그래서일 테다. 한글에 대한 이런 자부심에는 넉넉한 근거가 있다. 한글은 `과학과 휴머니즘'이라는 대척점에 있는 두 개념을 모두 껴안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또 한글은 ‘IT강국 대한민국’의 튼튼한 날개이기도 하다. 지하철을 타면 수많은 청소년들이 휴대전화 화면에 코를 박고 있다. 친구나 연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다. ‘엄지족’들의 손놀림은 날렵하다 못해 신기(神技)에 가깝다. 이는 휴대전화 입력의 대표적인 방식인 천지인(天地人) 방식 덕분이다. 이는 천(·)지(_)인(l)의 모습을 본떠 만든 모음의 생성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빠른 속도로 한글을 입력할 수 있도록 한다. 중국은 한자를, 일본은 한자와 가나를 혼용하면서 정보 처리가 비능률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비슷한 양을 컴퓨터에 입력하는데 한자·히라가나보다 한글이 7배 빠르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한글은 무엇보다 과학적이라는 특징 못지 않게 `휴머니티'를 갖추고 있기에 더욱 돋보이는 글자다. 모든 이에게 문호가 열려 있고 진입장벽이 낮은, 평등한 문자라는 점에서 그 우수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자음 14개와 모음 10개, 단 24개의 자모로 8천800개의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경제적’ 문자인 한글은 외국인도 배워서 익히기가 극히 쉽다. 이러한 한글의 특성은 드디어 국제 기구에서 공인을 받기에 이르렀다. 유네스코(UNESCO)에서는 1990년부터 해마다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이들에게 ‘세종대왕 문맹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주고 있다. 이 상의 이름이 세종이라는 이름을 딴 것은 세종 임금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서 문맹자를 없애는 글임을 세계가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글 덕분에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서'의 저자인 백문식(56)남양고등학교 교장은 “문화상품 등 실생활 분야에까지 응용되어야 한글은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세계인의 생활 속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글의 우수한 점을 정보화시대에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인쇄매체가 아닌 각종 영상매체를 위한 글자체까지 개발하는 등 한글의 가독성과 조형미, 예술성을 극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취재>지역신문발전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