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연못 ⑩

기업의 최우선 목적이 성장이고, 이익이라면 일단 서승돈은 그 두 가지 조건을 백 퍼센트 충족시켜 준 셈이다. 이른바 최고 경영인으로서, 그 자질을 충분히 확인시킴과 동시에 김상도가 기대했던 대로 역시 ‘큰 재목’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특히 전자의 경우 하도 경쟁이 치열해서 기존 순위를 뒤바꾸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정평이다.

한데 서승돈이 그런 장애물을 겁도 없이 한순간에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기실 그의 군단이 입성하기 전만 해도 영림전자의 업계 순위는 고작 3위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말이 3위지 재벌급이 아닌 중소기업에 불과한 A사에 거의 따라잡히다시피 해서 실제로는 4위 수준이라 해야 옳았다.

따지고 보면 전무급의 서승돈을 전격적으로 부사장에 진급시키면서, 대표이사직의 대임을 맡겼던 것도 전임 사장의 경영 부실 때문에 취해진 일종의 극약처방이었다. 그만큼 영림전자는 불치의 질환이라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병에 허덕이고 있던 터였다.

한데 서승돈이란 젊은 의사에 의해 그것이 거의 완치에 가깝게 치료되어 버린 것이다. 흔히들 그런 혁신을 두고,

“어어, 왜 저래? 저러다가 어떻게 감당하려구?”

오금이 저려 죽겠다는 식으로 힐책하기 일쑤지만 웬걸 서승돈은 남이야 망건 쓰고 오줌 누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과감하게 예리한 칼을 들어 환부 깊숙이 꽂아 넣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림전자의 막혔던 혈관에 왕성한 피돌림을 새롭게 불어 넣은 것이다. 회사가 서서히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그때마다 김상도는 서승돈을 불러 격려를 아끼지 않았으며, 사안에 따라 계열사 사장이 다 모이는, 이른바 어전회의 같은 데서 서승돈의 빈틈 없는 경영 혁신과 그 업적을 널리 치하해 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서승돈의 명성이 자꾸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룹 차원의 공식 기구가 만들어질 때마다 그러하다. 그 핵심 역할을 서승돈이 맡아 놓고 차지하는 것이다. 자연히 김상도와 독대하는 시간이 잦아진다.

이번 케이스가 특히 그러하다. 다름 아닌 영림해양개발 프로젝트다. 김상도는 전문성이 다소 떨어지기는 해도 서승돈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철두철미한 기대와 신뢰를 앞세워 덜컹 영림해양개발 위원회에 서승돈을 가담시킨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서승돈만큼 영림해양개발과 밀착된 인물이 또 어디 있는가. 영림그룹 사장단 중에서 김상도의 총애를 받는 다섯사람을 선발, 해양개발운영위원으로 임명했고, 그중 가장 똑똑하다고 인정되어 서승돈을 운영위원회 간사로 발탁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관련 간부들을 불러 놓고 함께 다그치고, 함께 격려하고, 함께 머리를 짜내어 정상 가동 묘안을 찾곤 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누구보다 서승돈이 해양개발의 제반 문제와 그 해결 방안까지 줄줄 꿰고 있다 해야 옳다. 물론 해양 개발에 관한 주요 스케줄도 마찬가지다. 윌리엄 피셔 2세의 비서 책임자 죠지 마샬의 방한도 잘 알고 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주한 미 대사까지 동원하며 고군분투했던 것도, 어쩌면 그 자리에 홍주리를 배석시키기 위해 김상도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도 서승돈은 익히 알고 남을 터다. 한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서승돈이 하필 그 시간에 홍주리를 가로챌 수 있는가 말이다.

홍주리가 누군가. 비록 지금은 죽고 없지만 막내아우 김상수의 부인 아니던가. 서승돈을 천거하여 오늘에 이르게 한 은인이 김상수일진대, 어찌 그 부인을 넘볼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