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평론가로, 향토사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양수(73)씨처럼 조병화 시인의 옛일에 대한 기억이 또렷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중학교 시절 그에게 직접 배운 탓도 있지만 1991년부터 조병화 시인의 호를 따 시작한 `편운문학상'의 운영위원장을 줄곧 맡아 온 영향력도 있을 것이다.
“선생님은 당신이 학교에 다닐 때는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고, 책도 많이 팔린 것에 대해 늘 남에게 신세를 졌다고 여기셨습니다. 후진들에게 그 신세를 갚는다는 차원에서 문학상을 제정하셨어요.”
이제는 젊은 층에게 편운문학상 운영위원장 자리를 넘겨주고 싶다는 김씨는 조병화 시인과 인하대학교와의 인연 한토막을 들려줬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가 트럭 2대를 갖고 초기사업을 시작할 때 경영애로가 있으면 조병화 시인이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부인에게 부탁해 돈을 빌려줬다는 것이다. 이게 인연이 돼 조 회장의 부인과 조병화 시인의 부인인 김준 원장이 가까워졌다고 한다.
“한 번은 인하대학교 재단이사 명단에 선생님이 포함됐던 모양입니다. 부인 김준 원장이 그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조병화'란 이름을 지워버린 적이 있다고 해요. 그만큼 부인과의 불화가 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1981년부터 5년 정도를 인하대에서 교수로 생활하셨습니다.”
김씨는 또 “조병화 선생님은 인천에서는 수학교사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유명했다”면서 “길영희 교장선생님과의 불편한 관계로 서울로 떠날 때에는 서울중학교에 가서 사정을 설명한 그 날로 그 곳의 교사로 임명될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병화 시인에 대해 “시 속에서 살다 가신 분”이라고 한마디로 평했다.
<정진오기자·schild@kyeongin.com>정진오기자·schil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