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얼마 앞서 공개되었던 `플라이트 93'과 비교 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일단 9·11이라는 함부로 풀어내기 민감한 소재가 그렇다. 당연히 두 작품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재현된 작품들로 형태적으로는 드라마의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주제면에서는 숭고한 인간애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두 영화의 감독들 모두 과거 매우 노골적 정치 색을 띠는 작품들을 연출해왔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연출경력, 작품 수와 그 정치적 견해의 입장이 상이하다는 극명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플라이트 93'이 비교적 무명배우들을 기용해 소극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있는 반면,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거대 홍보를 앞세워 나름 블록버스터로서의 면모를 숨기지 않는다.
영화 자체를 평가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아니겠지만 두 영화 모두 국내에는 UIP를 통해 직배형식으로 소개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두 편의 영화는 적당히 계산된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개봉하고 있다. 이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21세기 최악의 재난이라 할 수 있는 9·11을 다룬 영화들은 피해자를 자처하는 미국인들의 독과점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제목 그대로 9·11 당시 사건의 중심부였던 세계 무역센터의 붕괴를 정면에서 다루고 있다. 구조를 위해 건물 내부에 진입했다가 뜻밖의 붕괴로 인해 잔해에 함몰되었던 두 명의 경찰이 구조될 때까지 겪어야만 했던 힘겨운 생존의 기록을 다각적 시각으로 재현해낸다. 그 안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 구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주인공 내면의 추억과 번민들이 공존하지만 정작 항공기 충돌이나 건물 붕괴에 대한 웅장한(?) 장면들은 의도적으로 생략되고 있다. 제작진은 익히 이같은 자세가 아직까지 끔찍한 악몽을 잊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라 말하고 있고, 비슷한 입장에서 감독 `올리버 스톤'은 과거의 작품들과 달리 이 영화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배제한 인간애 자체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 단언하고 있기도 하다. 과연 그것이 진실일까? 완성된 영화가 보여주는 결과는 상당히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실화라는 단순한 소재를 배제한다면 영화 자체는 너무나 진부하고 지루한 재난영화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그렇게 아니라고 주창했으면서도 결국 영화 후반에 이르러 은근슬쩍 이빨을 드러내는 뚜렷하고 야비한 정치적 입장은 차라리 노골적으로 드러낸 그것들보다 더욱 역겨운 악취를 풍긴다.
하기야 만약 과거에 대한 온전한 성찰과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연민이 있었다면 당초 이런 뜨뜻미지근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기획조차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제복을 입고 나라의 녹을 먹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로는 말이다. 희생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건물에 들어섰다 생매장된 사람들은 더욱 노골적인 민족주의자에 의해 감동적인 구조를 선물 받는다. 영화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9·11이라는 사건은 아예 실체조차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일말의 존재가치조차 없는 작품이라는 이야기까지는 아니다. 어떻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다수 인물들은 청천벽력과 같은 재난 속에 내던져졌던 보통의 사람들이었던 게 사실이고 그들은 생존을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쳤던 생명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생존을 담보로 한 드라마, 그리고 숭고한 희생을 표면에 내세운 영화는 다수의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그냥 영화는 일방적일 뿐이다. 사건의 배경과 이후의 현실,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영화가 품고있는 자본주의적 전략은 얄팍한 호의에 쉽게 묻혀지고 만다. /collector@empal.com
최원균무비폴더
입력 2006-10-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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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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