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로에 자리잡은 팔달산 입구. 5~6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지역 노인들이 모여 앉아 가벼운 담소를 나누거나 햇볕을 쬐며 소일하던 곳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곳에서 노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무리지어 앉아서 아무 하릴없이 길가던 행인들을 멍하니 쳐다보던 모습들도 사라졌다. `정(淨)'에서 `동(動)으로' 노인들의 문화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엿하게 사회 흐름의 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는 `노인 문화'를 살펴보자. 〈편집자주〉


 ▲문화·예술 활동의 주체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에서 오네….”
 지난 9월 9일 고양시 덕양어울림 예술제에서는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됐다. 백발인 성성한 노인들이 메인 출연진을 제치고 등장, 가곡 `남촌' 등을 부르며 멋드러진 피날레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프로 못지 않은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 이들은 60세 이상 노인으로 구성된 ‘은나래 합창단(단장·김선광)’. 77세 최고령 여성회원부터 68세 남성회원까지 남자 9명, 여자 23명 총 32명이다.

 지난 3월 정식 창단한 `새내기' 합창단이지만 탄탄한 기량과 실력으로 킨텍스 공연, 자선 위문 공연 등 크고 작은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선광 단장은 “정년 퇴직 후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하다 소일거리로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노인복지를 위한 노인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인 커뮤니티
 지난 2005년 안양시의 최우수 혁신사례로 선정된 `안양 2동 실버포럼(ASF)'.
 60세 이상 노인 102명으로 구성된 이 커뮤니티는 지역 봉사활동 및 인터넷 카페 활동 뿐만아니라 컴퓨터 교육, 환경 기초시설 견학, 영화 관람, MT, 독거노인 방문 위로, 안양 예술 공원 지킴이 등 다양한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이 포럼은 사실 노인들의 작은 `불만'에서 시작됐다. 지역구 복지관인 안양 만안 노인 복지관이 안양 2동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 노인들이 모여 지난해 11월 `안양 2동 실버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창단식까지 개최했다.
 안양2동 주민자치센터의 도움으로 센터 내에 작은 공간을 확보했고 실버산업전문가포럼(KAPASS)이 프로그램과 운영을 지원하는 민관협력 방식(제3섹터)으로 새로운 노인 커뮤니티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경로당이 바뀐다
 “경로당은 이제 동네 노인들이 모여 며느리들 흉보던 곳이 아닙니다.” 노인들의 모임터인 `경로당'도 실질적인 노인 문화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각 지자체들은 경로당 활성화 사업을 내놓고 노인들의 여가 문화 센터 과정을 개설하는 등 경로당 문화를 바꾸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인천시 최우수 혁신사례로 선정된 부평구 경로당 문화바꾸기 사업은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이 사업은 경로당별로 도우미를 선정해 자생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추진, 2005년에 완전히 자리를 잡고 지역 노인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대표적인 사업은 건강도우미 프로그램. 관내 173개 경로당별로 한명씩의 도우미를 선발, 노인들이 하루 한 두 번씩 자발적으로 건강체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부평구는 노인들이 따라 하기에 적합한 ‘팔단금연법’이란 책자까지 만들어 각 경로당에 배포하는 한편 직접 교육에도 나섰다.

 경로당별로 체조에 필요한 매트와 음악테이프도 공급했다. 부평구 관계자는 “처음에는 도우미들이 다른 어르신들을 지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각종 표어를 만들어 복창하는 방법으로 참여를 유도해 지금은 전 경로당에서 건강체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평구는 이런 방식으로 카프카 쌓기와 걷기, 동네 청소하기, 게이트볼, PC배우기 등 각종 프로그램을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노(老)미남, 노(老)미녀 시대
 김정순(60·가명·오산시 오산동) 할머니는 얼마전 부터 피부과에 들러 검버섯 치료를 받는가 하면 집근처 헬스장과 네일아트센터에서 몸매 관리를 받는 등 `외모 가꾸기'에 푹 빠졌다. 또 수시로 백화점에 들러 쇼핑도 하면서 새로운 패션 트랜드 감각을 유지한다.

 김 할머니가 이같이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은 수원의 한 노인 전용 콜라텍에 다니면서 부터다. 수원~평택간 지하철 길이 시원스레 열리면서 오산에서 수원으로 잠시 마실(?)을 갔다가 오후 4~5시를 전후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된다. 김 할머니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고 싶지는 않다”면서 “젊은이들 못지 않게 미용과 패션에 뒤처지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노(老)미남', `노(老)미녀'가 늘고 있다. `실버세대'라 불리는 60대 이상 인구의 경제력이 커지고 노인 문화가 새로운 풍속도로 자리잡으면서 실버들이 외모 가꾸기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모를 가꾸는 노인들이 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한방 화장품. 올해에만 LG생활건강의 `후'를 포함한 한국화장품의 `산심', 미샤의 `미사자운' 등 10여개의 한방화장품 브랜드가 줄줄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