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꽁지꾼(놀음판에서 뒷돈을 대는 사람, 도박판의 고리대금업자) 겸 설계자(타짜들을 모아 도박판을 여는 사람)라고 밝힌 A(37)씨. 아직 인생에 있어 창창한 나이지만 이미 이쪽 도박계에서는 산전수전을 모두 겪고 또 성공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는 타짜 중의 타짜다.
“어제의 `동기'가 내일의 `적'이 되는 곳이 바로 이곳의 현실 입니다. 그동안 도박으로 자살하고 인생 망친 `꾼'을 본 것이 수두룩 합니다. 정말 이곳처럼 냉정한 곳도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A씨는 냉혹한 이 곳 현실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2~3년 전인가 하룻밤에 10억원 가까이 만지고 유명 외제 승용차까지 굴리던 한 타짜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도박장 마다 활개를 치고 있어야 할 그가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몇달 후. 깔끔했던 그의 모습은 너덜너덜한 옷차림과 씻지도 못한 몰골로 변했고, 판 당 1천원, 1만원짜리에 기웃거렸다. 이게 끝이 아니다. 또다시 그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A씨는 “아무리 도박에서 날고 긴다고 하는 사람도 갑자기 곤두박질 치는 것은 비일비재 하고 끝내 자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봐왔다”고 말했다.
A씨도 마찬가지. “20여년의 도박생활 동안 벼랑 끝으로 떨어져 보지 못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갓 스무살때 사채업으로 시작한 그의 도박 인생도 예외 일수는 없었다.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빚에, 사람에 쫓겨 살아간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두렵다”고 한다. “은행원과 증권사 직원들이 수십억원의 돈을 횡령하는 것도 상당수가 도박 때문”이라고 A씨는 전했다.
기술(?)로 휩쓸다 얼굴 알려져 사채업자로
▲타짜의 길=A씨는 도박판에 현존하는 `전설의 타짜'다. 그에게 도박은 `중독'이나 단순한 `놀이' 차원의 행위가 아니었다. 엄연히 돈을 벌기위한 경제적 수단이었다. “도박을 하나의 업으로 삼아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생활해왔다”는 것이다.
“얼마나 벌었냐고요? 그래도 꽤 벌었죠. 그런데 저는 도박으로 번 것은 별로 없어요. 대부분 사채로 벌었으니까요.” A씨가 마지막으로 도박판에 참가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어디를 가든 이름과 얼굴이 이미 알려져 판에 잘 끼어주지 않아서다. 그래서 A씨는 속임수를 쓸 줄 아는 기술자들을 몇명 데리고 다니면서 돈을 지원하는 꽁지꾼 겸 설계자로 도박업에 계속 종사(?)중이다. 물론 `구라판'(속임수)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기술을 쓰지 않고 돈을 벌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얼굴을 드러내놓고 하지 못하자 선택한 길이다.
지금까지 꾼들에게 사채를 빌려주고 받지 못해 포기한 돈이 5억원 정도 된다. 예전같으면 영화 `타짜' 처럼 조직폭력배를 이용해 회수하겠지만 이제는 그러기 싫단다. 어느 정도 벌기도 벌었지만 `도박빚'이기 때문이다.
도박판 한번 걸려들면 100% 재산탕진
▲영화 `타짜'=영화가 실제 타짜들의 생활과 어느정도 비슷하냐는 질문에 그는 “영화에서 속임수를 쓴다거나 계획적으로 죽이는 일들은 지금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종종 있었던 일이다”고 말했다.
또 김혜수가 미인계를 이용해 돈 많은 물주(?)를 도박장으로 끌고 오는 것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도박판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때는 무조건 속임수를 쓰는 `기술'이 들어간다. 이미 상대방의 재력과 실력을 파악한 뒤라 100% 속이기는 누워서 떡먹기. 한번 이들에게 걸려들면 있는 재산 탕진도 모자라 빚까지 떠안고서야 풀려난다고 한다.
또 영화에서 마발이장이라고 불리는 도리짓고땡 도박장에 경찰들이 들이닥치려 하자 삽으로 돈을 커다란 가방에 쓸어 담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과장된 면이 있다고 A씨는 설명했다. 아주 큰 마발이장도 1억~2억원의 현찰이 돌아 다녀 그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톨게이트 부근 '마발이장' 자주열려
▲마발이장은 어떤 곳=영화속에서 80여평 규모의 하우스에 두 줄로 수십명이 앉아 게임하는 것이 바로 `마발이(빵께)'다. `도리짓고땡(5장의 패 중 3장의 숫자의 합으로 10이나 20을 만든 후 남은 2장의 숫자의 합으로 겨루는 것) 게임으로 4명밖에 할 수없는 도리짓고땡을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든 도박이다.
보통 경기도의 경우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근에서 마발이가 자주 열린다. 그 중에서도 비봉, 신갈, 안산, 구리 톨게이트 인근이 마발이가 자주 열리는 장소다.
장소의 요건으로는 우선 큰길에 외길 이면서 산을 등지고 있어야 한다. 보통 7~8시간 걸리는 도박 시간중에 경찰이 올라온다고 해도 2인1조로 구성된 속칭 `문방팀'(톨게이트 길목에서 망을 보는 사람들)들이 무전기로 연락하고 도망가는데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또 속칭 `빵'(돈을 모두 잃는 것)이 나더라도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는 자리를 절대 뜰 수 없다. 돈을 잃어 혹시라도 신고를 할지 몰라서다. 여기서는 휴대폰, 개인 무전기등 모든 개인 통신장비 휴대가 금지된다. 게임을 즐기는 도박꾼들 90%가 주부인 마발이 판에서는 “우리 아이 학교보내야 하는데….” “남편한테 지금 안들어 가면 죽는데…” 등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게임종료 선언 때 까지는 끝까지 남아야 하는게 나름대로의 규율이자 기본이다. 이 또한 폭력조직이 배후에 있다.
A씨는 도박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한번도 경찰 조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얼마전 성인 PC방에서 손님으로 앉아 있다가 적발돼 벌금 100만원 낸 것이 전부다.
A씨는 또 “최근 성인 PC방과 게임장 단속이 심해지면서 한동안 사라졌던 도박장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타짜의 세계는 대단한 것도, 영화에서 처럼 멋진 세계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