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노무현 진검승부 속에

4명의 잠룡들이 꿈틀댄다





●천정배는 DJ를 선택했다

천정배. 목포가 낳은 3대 천재로 꼽힌다. 초등학교부터 서울대법대, 사법고시에 이르기까지 수석만 했다. 15대 총선거를 앞두고 인권변호사 천정배를 영입한 DJ는 “천 변호사를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 아닐 수 없다”고 극찬했다.

천정배는 또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참여정부를 지탱했다. 천정배는 2002년 민주당경선때 노무현을 지지하고 나선 유일한 초선의원이었고, 열린우리당의 창당논리를 세웠으며,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장관을 지낸뒤 올해 7월 당으로 복귀했다. 김대중의 정치적 적자이자,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였던 셈이다.

그런 천정배가 지난 7월 당복귀 일성으로 “열린우리당이 추미애, 한화갑, 조순형 의원 등을 껴안지 못한 것이 한계였다”면서 당의 결함을 인정했다. 급기야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통합신당 창당을 주장한뒤 DJ의 목포방문에 동행했다. 뒤에 알려졌지만, 천정배는 지난달 22일 노 대통령과 오찬회동을 가졌다. 이자리에서 두사람은 “서로의 견해차만 확인했다”고 한다. 여권 고위 핵심관계자는 “노무현과 천정배의 단독회동은 이별 의식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두사람은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결별한 것이다.

●김혁규, 기로에선 잠룡

여권 분화의 거센 소용돌이속에서도 제자리를 잃지 않는 또 하나의 잠룡이 김혁규다. 경남에서 태어나 천신만고끝에 학업을 마친뒤 30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40대에 미주한인회장을 맡을 정도로 성공한 CEO. 김영삼 문민정부때 귀국해 경남도지사를 세번 지낸 최고의 지방정부 CEO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영입한 것은 국무총리 지명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극렬한 반대로 인해 김혁규는 국가경영 CEO의 꿈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권력핵심부에서는 연말 개각대상에 포함될 국무총리 물망에 김혁규가 오르내리고 있다. 여권발 정계개편론이 소프트 랜딩되고, 오픈프라이머리가 이뤄진다면 최후의 결승전에 이름을 올릴 가장 유력한 인사로 꼽힌다. 김혁규는 여권분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찬바람이 강해질수록 그의 선택의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김혁규는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범여권의 최강의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정세균, 정책을 통섭한 경륜가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거쳐 (주)쌍용의 상무를 지낸 경영학 박사이다. DJ의 발탁으로 15대 국회에 입성해 3선을 지내는 동안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당의장을 지낸뒤 산업자원부장관직에 올랐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을 연구했고 경제, 국제정치, 동북아 외교에 능한 정책통이다. “저의 의지로 무엇이 되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순리를 중시한다.

정세균의 강점은 `원융무애'를 중시할만큼 적이 없다는데 있다. 원내대표와 당의장을 지내면서 논쟁의 현안을 모두 대화와 합리적 조정에 의해 풀어가는 탁월한 면모를 보여 당과 노무현 대통령이 모두 놀랐다. 범 여권 신당창당과정에서 대화합과 통합이 필요한 분기점에서 역할과 지지도가 치솟을 잠재력을 갖고 있다.

●유시민, 노무현의 마지막 보루

대구에서 태어나 70년대 서울대 운동권의 주축이었으며 독일 마인츠대로 유학, 경제학을 전공했다. 경제학과 역사, 현대철학 등 박식함이 사통팔달에 이른다. MBC 100분토론의 사회진행을 맡으면서 대중적 인기를 모았고 실험적인 개혁당을 창당,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후광으로 2002년 재·보선을 통해 원내에 입성한 재선의원이다. 노 대통령의 깊고도 미래지향적인 정치 철학과 정책기획의 토론상대자로서 동지이자, 후계적 입장에 서 있다는 평가다. 평등주의에 입각한 정치철학과 강철같은 개혁의지를 갖고 소신을 굽히지 않아 `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으나, 보건복지부장관직에 오른뒤 부드럽고, 온화하며, 합리적인 행정가로서 변신에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유시민은 우리당의 존폐와 상관없이 노무현계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박춘대기자·pcd@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