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SK텔레콤을 비롯한 SK그룹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모태 기업은 무엇이며 그 기업은 어느 지역에서 태동했을까?
정답은 수원에서 탄생한 수원 최초의 향토기업 SK케미칼이다.
SK케미칼(대표이사·김창근 부회장)은 1969년 7월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600번지에서 태어나 이후 40여년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회사로 자리매김해 왔다.
지난 30여년간 고급 의류 소재인 아세테이트 원사·직물 사업은 여전히 호평을 받고 있으며 최고급 담배필터의 원료인 아세테이트토우는 전세계 20여개국에 수출하는등 정밀화학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 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노인 복지증진을 위한 장수 근로회관(장안구 정자동), 종합 운동장 및 실내체육회관(장안구 조원동), 선경도서관(장안구 신풍동) 건립 외에도 무주택 시민을 위한 해비타트(집 지어주기) 운동을 벌이는 등 지역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수원시민임을 자랑스럽게 하는 SK케미컬의 과거 발자취를 함께 더듬어 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6·25이후 고물 직기 20대로 시작
[1] 폐허 속의 창업
공장 정문에 들어서면 왼쪽에는 한때 매점으로 쓰였던 단층 건물이 보이고 정면에는 일제시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SK케미칼 수원공장 본관 건물이 있다.
수원시 권선구 평동 4. 최종건(崔鍾建) 전 회장이 SK 모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선경 직물'의 터를 닦은 곳이다.
최종건 회장은 1926년 수원시 평동에서 부유한 농민의 장손으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1942년 신풍소학교 졸업(현 수원 신풍초) 후 경성직업학교 기계과에 입학.
자유분방하고 패기만만한 성격이었던 최 회장은 SK그룹 정신의 양대 축이 되는 `패기와 지성' 가운데 `패기'를 조성하는데 큰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그는 한국 전쟁이 끝난 53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선경직물'을 인수했다.
폐허가 된 이곳 공장터에서 고철이 되다시피 한 직기(織機)를 수리하기 시작, 고물직기 100대 가운데 20대를 조립·가동하는데 성공했다. 이 선경직물이 바로 현 SK의 성장 기반이 된다.
“입사해서 공장을 둘러보니 폐기된 기계 부속, 부서진 벽돌 조각 등이 너절하게 흩어져 있어 전란중의 폭격상을 말해주고 있었다.…최종건 회장이 손수 돌아다니며 재건 작업 감독과 공장 생산 감독을 하고 있었다.…밤에는 공장 복도에다 가마니를 깔아놓고 잠시 주무시다 일어나서 일을 하곤 했다.…특히 회장은 기계가 고장나면 부속품도 직접 시장에 나가 구입했고 기계도 직접 고쳤으며 제품도 직접 시장에 내다 팔았다….”
<故 이강석 (주)선경 전무의 회고 中>故>
'루스터' 안감등 3개제품 대히트
[2] “닭표 있어요?” - `루스터 안감' `봉황새 이불감' `곰보 나일론'
1955년에 들어서면서 한국 직물업계는 침체 국면을 맞았다. 전시 인플레이션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한 반면 생산은 넘쳐 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경직물의 인조견(人造絹·만든 명주실로 짠 비단) `루스터(Rooster·장닭)'는 불황이 없었다.
특히 55년 `해방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루스터'가 부통령상을 받자 양복 안감을 찾는 소비자들은 으레 `닭표'를 찾게 됐고 급기야 서울 동대문 시장을 중심으로 가짜 닭표 안감이 범람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후 선경직물은 대형 문직기(紋織機·수천개의 종침과 횡침의 조작에 의해 무늬가 짜여지는 방직기)를 이용해 72인치 짜리 대형 이불감을 생산해 냈다. 또 이불감에 봉황새를 그려넣으면서 58년5월 선경직물은 `봉황새 이불감'을 생산했고 이는 한동안 예비 신부가 필수적으로 준비해야할 혼수감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선경직물은 특히 나일론이 수분을 흡수하지 못해 피부에 달라붙는다는 점을 감안해 나일론에 돋을무늬를 새긴 제품을 고안했고 이 제품은 모양 그대로 `곰보 나일론'이라고 이름붙여진 채 시판됐다.
이로써 선경직물은 정치·경제적으로 혼란했던 시기에 `3연타석 홈런'이라는 직물업계의 큰 족적을 남기게 됐다.
최종건-종현 형제 합심 불황 타개
[3] 최종건과 최종현
“밖에서 박력있게 뛰는 사람은 최종건이요, 소리없이 일을 꾸미는 사람은 최종현이었다.”
<최종건 전기 中>최종건>
이에 최종건 회장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당시 미국에 유학 중이던 최종현씨에게 손을 내밀었고 같은해 11월 최종현씨가 귀국, 두 형제가 함께 수원 공장을 준공한다.
이후 최종건·종현 체제의 선경직물은 66년 선경화섬(수원시 장안구 정자동), 69년 선경합섬을 잇따라 설립했고 최고의 히트 상품인 `앙고라' `깔깔이'를 생산, 위기를 타개한다.
촉감이 까슬까슬하다고 해 `깔깔이'라고 불렀던 조제트(Geogette·假撚絲)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직물 도매상들이 수원 공장으로 몰려와 진을 칠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73년 당시 MBC의 간판 프로그램인 `장학퀴즈'를 후원하는 등 장학사업에도 과감한 투자를 했고 워커힐 호텔을 인수하는 등 사업의 다각화를 꾀한다.
이 와중에 최종건 회장은 73년 11월 폐암으로 타계했다. 이후 선경직물 최종현 사장이 선경화섬과 선경합섬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바야흐로 최종현 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제약업등 영역확대·사회발전 기여
[4] SK케미칼
고급 의류 소재로 호평을 받고 있는 아세테이트 원사·직물은 여전히 전 세계 20여개국에 수출되는 등 널리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2005년 SK제약을 합병하면서 신약 개발분야에도 진출, 세계 최초로 제3세대 백금착제 항암제를 개발하는가 하면 관절염치료제 `조인스 정'개발에 성공하는 등 새로운 개념의 의약품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이후 지역 고용창출은 물론 장수 근로회관(정자동) 건립, 종합 운동장·실내 체육관(조원동) 건립, 선경도서관(신풍동), 해비타트 사업 등을 추진해 왔다.
또 각종 장학사업과 수원시 월드컵 유치를 위한 기금 조성 등 수원과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회사의 미래사업에 대한 구상 차원에서 수원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도 등을 종합해 볼때 SK케미칼은 수원과 함께 오랫동안 존재해야 한다”면서 “SK케미칼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통해 수원지역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