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혼기를 훌쩍 넘긴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 외국 여성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
 한국 내에서는 더이상 배우자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외국 여성들만 전문적으로 소개해 주는 결혼 정보 업체들도 크게 늘었다.
 자동차를 타고 시 외곽으로 나가보면 “○○○ 여성들과 결혼하세요”라고 씌어진 현수막들이 금방 눈에 띈다.

 하지만 우리네 정서에는 아직까지 `국제 결혼'이라는 단어가 여간 탐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결국 대한민국 노총각들이 눈을 돌린 곳은 바로 탈북 여성.
 ▲유교 사상에 기반한 순종적인 태도 ▲강인한 생활력 ▲`남남북녀'라는 말에 걸맞는 외모 ▲무엇보다도 외국인이 아닌 같은 동포라는 점 때문에 누구보다도 한국에서 무난히 정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심리 때문이다.

 이에따라 탈북 여성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일부 결혼정보 업체들은 `북한 팀'을 따로 편성해 탈북 여성들만 전문적으로 관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남성들이 숱하게 `들이댄' 것에 비해 결혼까지 골인한 `성혼율'은 극히 낮다는데….

“먹고 살 형편만 되면 탈북 여성들은 금방 시집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탈북 여성들은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결혼정보 업체 관계자들은 “탈북 여성들은 다른 동남아 외국인들과 한 부류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미 주민등록증도 발급받고 한국에 정착한 어엿한 `한국인'으로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발생한 실사례를 통해 탈북여성들에게 `러브 콜'을 보내고 있는, 그러나 쉽사리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노총각들의 속 사정을 들여다보자.

'먹고 살만하면 OK' 속단 금물

<사례 1> 시골에 살기 싫어요.

평택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A(38)씨. 키 180㎝의 건장한 체형인데다 얼굴 윤곽도 뚜렷한 것이 자타가 공인하는 `호남형' 인상이다. 안정적인 직장과 훤칠한 외모. 커플매니저들이 눈독을 들이는 영락없는 `상등품(?)'이다. A씨는 모 결혼정보업체에 “탈북 여성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신청을 했다. A씨는 특히 결혼이 성사될 경우 “정육점 옆에 조그만 식당을 아내가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A씨는 지난 2002년 탈북해 한국에 입국한 B(22)씨와 만나 좋은 감정을 갖게 됐지만 결국 이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서울이 아닌 `시골'에 산다”는 이유였다.

<사례 2> 나이 차가 너무 많아요.

기계 부품 제조 공장을 운영하는 C(55)씨는 아내와 사별한 뒤 90세가 넘은 노모를 모실 30대 후반의 탈북여성을 찾아 결혼정보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연봉이 8천만원에 달하는데다 아들 둘을 장가보내면서 서울 송파구에 아파트를 마련해줄 정도로 탄탄한 재력가였다.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는 만큼 부모 공양 사상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탈북 여성이 90세 노모를 극진히 모시는 일은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8살이라고 소개한 탈북여성 D씨와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이 차로 인한 생활 방식이나 생각이 서로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시골거주·나이차이 등 실패 많아

<사례 3> 한국 사람 못 믿겠어요.

2002년 탈북에 성공한 E(41·여)씨는 “직업은 경찰, 자식도 없고 조그만 집을 마련해 살고 있다”던 F(48)씨와 좋은 만남을 가졌다. 그러나 막상 동거를 해 보니 F씨는 변변한 직업도 없는데다 집은 전세였고 스무살 난 아들까지 함께 살고 있었다. E씨는 그래도 그간의 `정 때문에' 참고 살아보려 했다. 그러나 F씨는 사랑 때문이라기 보다는 탈북자 창업지원 대출금(1억원) 때문에 E씨에게 접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F씨는 지원금이 현금 대출되지 않고 `탈북자 명의로 점포 임대시 대출 지원'의 형태인 것을 알고 E씨를 집에서 쫓아내기 까지 한 것. E씨는 결국 `행복한 가정을 이루리라'던 희망을 접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