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스스로 굴복을 선언했다. “현재 대통령이 갖고있는 정치적 자산은 당적과 대통령직 두가지 뿐이다. 만일 당적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면 임기중에 당적을 포기하는 네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다. 아주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되도록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그 길 밖에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임기동안 직무를 원활히 수행하자면, 이런저런 타협과 굴복을 필요하면 해야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다만 임기를 다 마치지않는 첫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이 발언을 탈당의사 표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때 여당 프리미엄을 고려해 대통령의 탈당을 만류했던 열린우리당이지만 지금은 살벌한 표정이다. 당내에서는 탈당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과 은근히 바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노 대통령이 먼저 탈당카드를 꺼내 든 것도 여당의 분위기를 읽고 압박에 밀려 쫓겨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측면도 있다.

오히려 탈당을 기정사실화 해놓고, 시기를 조율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청와대도 `그럼 좋다'는 결연한 태도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당적에 연연하지 않는다. 탈당해도 더 잃을게 없다. 당에서 나가라면 언제든지 탈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언급에 이은 청와대 주요 관계자들의 탈당 관련 발언은 모두 일치한다. 사실상 탈당 수순을 밟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노 대통령이 탈당한다면 그 시기는 정기국회 직후로 전망된다. 예산안과 주요 법안 처리를 팽개치고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분란을 일으킨다면, 공멸을 부를 수 있다는 공감때문이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이달 중순께나 돼야 대통령의 탈당 수순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 때문이다. 열린우리당도 `민생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대통령을 쫓아냈다'는 비난을 피하자는 심산이다.

노 대통령으로선 당 소속 현역의원인 한명숙 국무총리, 정세균 산자부장관,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등을 자연스럽게 당으로 되돌려 보내는 식으로 탈당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현역이 아닌 이재정 통일장관이나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대통령과 함께 탈당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 당 출신 장관을 돌려보낸 뒤의 개각이 향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탈당 선언뒤, 초당적 국정운영과 대선의 중립적 관리 입장을 밝히면서 정당의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을 중립적으로 꾸릴 수도 있다. 아예 거국내각 구성을 다시 요구할 수도 있다.

제는 열린우리당이다. 대통령이 탈당하고 나면, 국정 실패를 두고 친노그룹의 반발이 예상된다. 집권세력의 공과를 함께 져야할 집권 여당의 책임을 외면하고, 대선 승리를 위해 현직 대통령을 쫓아낸 것은 창당정신에 어긋난다는 논리를 앞세울 전망이다. 이들의 문제 제기는 곧 열린우리당 분열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을 깨지 말고 당을 리모델링하자(백원우 의원 등)”는 친노계열 의원들의 주장과 “헤쳐 모여를 통해 범여권 세력을 재결집하자”는 통합신당창당론이 부딪힐게 뻔하다. 통합신당창당론은 압도적 다수다. 친노계열 의원들은 전국구까지를 모두 뭉뚱그려 40명 안팎에 이를 전망이다.

린우리당의 분당 과정, 즉 정계개편의 시나리오는 대략 세 갈래로 그려볼 수 있다. 일단 열린우리당이 분화되지 않는 경우다. 당이 정풍과 쇄신을 통해 당명을 바꾸고, 당헌당규를 개정하여 다른 정당을 흡수해가면서 대선 전략을 구사해가는 방향이다. 그러나 관측통들은 열린우리당 지지도 8%가 말해주듯이, `그들만의 노력'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당내에서도 “어떤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여도 국민들은 더이상 믿어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섞인 패배의식이 팽배한 상황이다.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갈래는 열린우리당이 당 해체를 선언하고 민주당과 고건, 재야세력과 함께 범민주세력의 신당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열린우리당내 친노직계와 민주당내 한화갑계의 원한이 너무 깊어,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민주당은 절대 안된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고, 열린우리당의 친노직계도 말도 안된다고 자른다. 최소한의 분화는 필연적이란 얘기다.

결국 가능성이 가장 큰 경우의 수는 열린우리당 다수를 점하고 있는 통합신당파와 민주당이 재야, 고건 등 중도노선을 표방하는 정치세력들을 규합, 동등한 지분을 갖고 재결집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열린우리당 잔여세력은 집권당임을 주장하게 된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뒤에도 지속적인 애정을 표시할 가능성이 높다. 차기 국무총리를 당에서 선발하는 혜택(?)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정국은 한나라당과 민노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노선을 계승하는 통합신당과 노 대통령을 따르는 열린우리당 등 4당체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