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암암리 오랜 관례(?) 중 하나였던 크리스마스 시즌과 예쁜 로맨스 영화의 궁합이 영국식 억양일 때 더욱 환영받게 된 것은. 사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 영화 `러브 액츄얼리' 이후 연말 극장가엔 언제나 비슷한 분위기 영화들의 포스터가 수 년째 걸려왔고, 이 중엔 노선이나 완성도 등이 여러모로 다름에도 안면 몰수한 채 유사형태의 비주얼로 홍보를 한 영화도 적지 않았다.

뭐 나름 효과가 있으니까 적잖은 수가 꾸준히 고수하는 방식이겠지만, 이만 믿고 극장에 들어섰다 실망하거나 부족함을 느끼는 관객들에겐 너무나 불합리한 거래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전략적 유도'에 의한 `관객 자발적 오해'가 개별 영화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개성과 재미마저 온전히 즐길 수 없도록 사전적 기회를 박탈하고, 결국엔 아류작 정도의 평가절하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사다코(`링'의 산발혼령)'의 후예들이 찾아오듯, 어쩔 수 없이 `러브 액츄얼리'를 연상시키는 유사, 또는 유사 이미지를 전면에 내건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하기 시작했다. `로맨틱 홀리데이' 역시 그 중의 한 편이며 개중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끌 만한 요소들이 가장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LA의 성공한 영화홍보사 사장인 `아만다'는 방금 막 남자친구를 차버렸다. 한참 어린 여사원과 잠자리를 했다고 실토한 그는 미안하기는커녕 되레 원인은 그녀에게 있다고까지 말한다. 눈물조차 나지 않는 아만다는 어딘가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겠다.

한편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칼럼리스트로 일하고 있는 `아이리스'는 3년 동안 짝사랑하던 남자 동료의 결혼발표에 망연자실한 채 집에 틀어박혀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천성적 바람둥이가 그인걸 알면서도 잠시도 잊을 수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 이때 먼 곳에서 구원과도 같은 아만다의 전화가 걸려온다. “2주 동안 집 바꿔 살아보자면서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왓 위민 원트'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이 방면에 있어서는 남다름을 입증한 여류감독 `낸시 마이어스'. 그녀의 섬세한 시선과 풍부한 위트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녀의 뛰어난 재능은 비록 “워킹타이틀(`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을 제작한 영국 제작사)”의 로고가 빠져있을지언정 이 영화를 관객들이 미리 기대할만한 재미와 감성을 유사하게 만족시키는 작품으로 완성해냈다. 지구력은 떨어지지만 전반적으로 센스 있는 각본도 그 성과에 한 몫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재능과 장점을 차고 넘치게 발산하는 배우들의 매력은 이 영화의 백미라 할 만하다.

도시적이지만 그래서 어딘가 모자란듯한 `카메론 디아즈'와 강인해 보이는 만큼 섬세한 이미지 또한 제대로인 `케이트 윈슬렛'은 이 영화를 이끄는 두 주인공으로서 자신들의 몫을 120% 달성해 낸다(두 여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아 보일 수밖에 없는 두 남자 배우 및 조연들의 연기에 대한 감상은 유보한다).

결국 예상했던 것 이상의 새로움이나 획기적인 변화 또는 도전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그냥 편하고 따뜻하며 적당히 유머러스한 것을 갈망하는 관객들을 크게 실망시키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