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드니 시인의 시상은 끝이 없구나". 이이 선생의 화석정 시조중에서. 11월 하순 답사팀을 맞은 초겨울의 화석정 마당에는 마른 낙엽만이 가득했다. 의주로의 통행이 가로 막힌지 반세기. 역사를 통찰하는 선생의 슬기가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화석정은 파평면 율곡리에 있으며 임진나루와 임진강이 한눈에 조망된다. 사진/조형기전문위원·hyungphoto@naver.com

   60. 의주로 >5< - 임진강 너머 마음만 길게 내닫고

   ■ 신의주, 마음이 먼저 내닫는 길

   의주로에 서면 신의주가 떠오르고 내쳐 달리고 싶은 마음이 펄럭인다. 기차를 타고 개성, 신의주를 지나면 압록강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강을 건너면 드넓은 평원이 펼쳐질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게 모두 고구려의 땅이었음을 뿌듯이 품고 오갔으리라.

   그런데 이제는 갈 수 없는 땅이니 북방 정서를 헌걸차게 다룬 현대시를 많이 만날 수 없다. 모든 것의 단절을 낳은 분단의 흔적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 새삼 암담하다.

   겨우 파주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서는

   동강난 경의선 찻간에서 나도 꿈을 꾼다

   차폐물로 골짜기에 숨겨진 탱크와 대포가

   펄펄 끓는 도가니 속에 들어가

   벌건 쇳물로 녹는 허황된 꿈을 꾼다

   그 힘으로 기차가 머리를 돌려 냅다

   신의주를 향해 내달리는 어리석은 꿈을 꾼다

-신경림, '파주의 대장장이를 만나고 오며' 일부

▲ 철길안내 표지판. 철길 이정표의 숫자가 곱씹어지는 '서울 56km, 평양 205km'.
   통일을 기다리는 '어리석은 꿈'은 시인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진행형 꿈이다. 그만큼 의주로에서 신의주 너머를 그리지 않는 길손은 없을 것이다. 그런 꿈에 힘입어 '기차가 머리를 돌려 냅다/ 신의주를 향해 내달리'면 얼마나 좋으랴. 기차를 타고 압록을 건너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것, 그 얼마나 오래 키워온 꿈인가.

   용미리의 잘 생긴 미륵에 소원을 빌고 다시 서도, 이 길은 만감이 교차한다.

   ■ 문인들의 묘와 시비, 문학비

   의주로에서 듣는 조선 선비의 행적은 현실을 다시 환기한다. 그 때문인지 길 부근에는 문인의 자취도 많다. 황진이 시비가 임진강 망배단(묘는 비무장지대에 있음)에 있고, 애틋한 사랑의 주인공 최경창과 홍랑의 묘가 다율리에 있다. 그뿐인가 문산 탄현에는 주요섭 묘와 문학비, 장곡에는 '국경의 밤'의 김동환 묘와 시비가 있으며, 조선시대 성혼의 묘 또한 인근에 있다.

   말없는 청산(靑山)이요, 태(態) 없는 유수(流水)로다

   값없는 청풍(淸風)이요, 임자 없는 명월(明月)이라

   이 중에 병 없는 몸이 분별없이 늙으리라

   성혼의 시조에는 조선시대의 유교적 이념과 자연관이 압축돼 있다. 청산은 말이 없고, 물은 태를 짓지 않으니 그 속에서 '분별없이 늙어가는 건' 복이 아닐까. 여기서 '분별'은 해석이 간단치 않은 의미의 심화로 종장에 깊이를 더한다. 그야말로 45자 내외에 우주를 담아내는 큰 그릇이 시조임을 잘 보여준다. 단순한 '음풍농월'을 넘어서는 이러한 자연관이나 철학이 바로 조선의 사상적 근간인 것이다. 선조들이 중시한 자연과의 조화가 서양에 비하면 얼핏 소극적인 듯하지만, 길게 보면 우주만물과 더불어 사는 진정한 생태학적 삶인 것이다.

▲ 임진강과 경의선 교각. 기차가 복선철길의 기능을 잃은채 단선으로만 도라삭역까지 운행이 되는 가운데 부서진 임진강 교각에서 단절된 의주로의 꿈을 키워본다.

   ■ 임진나루와 화석정의 정취

   임진나루에 서서 철조망에 휘휘 감겨 있는 우리 국토를 다시 돌아본다. 볼수록 '도처철조망 개유검문소(到處鐵條網 皆有檢問所)'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꽃은 피고 지고 그 속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밤낮으로 그 곳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도 그리움 때문에 꽃은 피고

   기다리는 자의 새벽도 밝아옵니다

   길 잃은 임진강의 왜가리들은

   더 따뜻한 곳을 찾아 길을 떠나고

   길을 기다리는 자의 새벽길 되어

   어둠의 그림자로 햇살이 되어

   저도 이제 어디론가 길 떠납니다

   -정호승, '임진강에서' 일부

   우리가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성이던 그곳에서도 멀리 날아가는 새떼가 보였다. 그 새들이 제 터를 찾아 넘나들면서 씨앗을 묻혀 옮길 것이다. 그런 와중에 생태계의 보고가 된 비무장지대는 역설적으로 분단이 낳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의 주 오염원인 사람들이 망쳐놓는 것들을 보면 비무장지대의 뭇 생명이 누리는 자유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화석정에서 길게 몸을 틀며 흘러가는 임진강의 물길을 오래 바라본다. 답사 당시는 마침 가을이 깊어 율곡의 시가 그대로 풍경이 되었다. 단풍이 임진강 물빛에 더할 나위 없이 고운데 기우는 저녁볕이 더 그윽한 만추의 소회를 불러일으켰다. 그 풍취에 한잔 술을 마다할 답사 팀이 아니니 어찌 그냥 지나치랴.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드니 林亭秋已晩

   시인의 시상은 끝이 없구나 騷客意無窮

   멀리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遠水連天碧

   서리 단풍은 해를 향해 붉구나 霜楓向日紅

   산 위에는 둥근 달 솟아오르고 山吐孤輪月

   강은 만 리 바람을 머금었는데 江含萬里風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나 塞鴻何處去

   저녁 구름 속에 울음소리 사라지네 聲斷暮雲中

   -이이, '화석정' 전문

   ■ 어딘가로 내닫는 마음의 길들

▲ 자유의 다리. 통일의 염원이 담긴 손수건과 태극기가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다.
   임진강의 저녁놀이 붉디붉다. 북을 향해 아득해지는 마음을 '자유로'에 풀어 달린다. 아마 일제시대의 시인 백석도 저 너머 어딘가를 마음으로나마 자주 달려갔을 법하다. 백석은 일본인의 식모 일을 하느라 손등이 다 터진 조선의 어린 딸도 가슴 저미게 그렸고, 함경도의 먹거리와 삶을 천연덕스럽게 재현한 시인이라 이 길에선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성혼선생묘역. 파주읍 향양리에 있으며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서 율곡 이이와는 평생의 벗이었다. 낙향후 파산서원에서 학문과 교육에 힘썼다.
   시 속의 '나타샤'가 혹 러시아 여성일지라도, 한 시인의 가없는 동경과 그리움이 폭설과 '흰당나귀'와 함께 아름답게 각인된다.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는 시인과 대작이라도 하듯, 끊긴 길 끝으로 머나먼 북녘의 설경이 새삼 겹친다. 간절히 그리운 그 무엇을 찾아 헤매거나 며칠간 푹 잠기고 싶은 폭설 속 산간의 정경이 차창에 거듭 스친다.

   한 해가 또 저물고 있다. 이즈음이면 꼭 펴보는 시가 있으니 황진이의 '동짓달'이다. 이 시조는 어떤 시인이 한국시사를 통틀어 최고로 꼽을 만큼 과연 명편이다. 그만큼 황진이의 시적 발상과 이미지, 말 놓음새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지금 봐도 놀라운 현대성을 담보한 것이다. 갈수록 빛나는 시조 한 편을 띄우며 금년도 길 답사를 잠시 내려놓는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정수자 시인·아주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