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인도차이나의 석양 ⑤

지금이니까 말이지만, 만약 홍주리가 남강정유 홍영호 회장의 외동딸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뒷거래로 어찌어찌 얽어맬 수 있는 여자였다면, 그날 밤으로 진작 요절이 나고 말았을 터다.

한데 공교롭게도 그녀는 그렇게 접근할 수 있는 신분의 여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영영 단념할 수도 없다. 생각다 못해 얻은 결론이 바로, 아우의 배필이다. 그런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우선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꽁꽁 묶어 가까운 곳에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우는 죽고 없다. 이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내일이라도 당장 재혼해 버리면 그 순간으로 남남이 되고 만다.

물론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적잖은 영림건설 주식을 그녀와 그녀의 딸 은경이 앞으로 증여(贈與)해 놓는 따위의 쐐기를 단단히 박아 놨지만…….

어쨌거나 그런 홍주리와 하룻밤 맺어진다고 해서 어찌 파렴치한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 보라, 그 얼마나 오래 이 찬스를 기다려 왔던가. 아니, 이런 완벽한 찬스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골똘해 왔는가. 기실 텍사코 프로젝트만 해도 그러하다. 일찍이 그녀를 통역으로 점찍어 놓았던 것도 처음부터 이 일에 적극 가담시킨 것도 그것을 빌미삼아 그녀의 거동을 일일이 간섭해 마지않았던 것도 모두 오늘의 이 찬스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상대가 홍주리니까, 이처럼 점잖게 라운지 체어에 앉아 저 광활한 황혼의 변화를 쥐죽은 듯이 바라보고 있지, 만약 지금 욕실에서 운신하는 여자가 탤런트 하춘지만 되어도 용수철인 양 벌써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을 김상도 회장이다.

물론 그 역시 파충류 허물 벗듯 옷을 훨훨 벗어붙인 모습일 터다. 그리고 샤워장이건 화장실이건 거침없이 들어서고 남았을 것이다.

"이 봐!"

마치 긴급한 지시라도 내릴 듯이 상대를 한껏 긴장시킨 다음, 이미 대책없이 공개된 그녀의 요부(要部)를 무턱대고 주무르고, 누르고, 찌르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어머, 어머?"

매사가 호들갑스러운 하춘지 같은 여자는 아예 첫 삽부터 비명을 질러 마지않는 스타일이다. 숫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청운각 새끼 최 마담 같은 스타일도 좋아하지만, 손가락으로 하늘 가리기 식으로 뻔할 뻔자 교태를 부리는 하춘지 역시 김상도 회장은 과히 즐겨하는 편이다.

한데도 하춘지는 결사적이다. 혹시 상대의 욕망이 죽지 않을까, 혹시 선반의 물건인 양 작은 진동에 떨어지지 않을까. 간신히 끼워 놓은 헐거운 전기 코드처럼 아예 빠져 버리지 않을까, 그토록 절절이 신경을 써 줄 수가 없다.

그녀는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건 간에 두 손을 가만 두지 않는다. 김상도 회장의 주요 부위를 꽉 움켜쥔다.

"어머, 어머!"

더 기승이다. 뭐랄까, 흡사 노동판에 어우러지는 타령이라고나 할까.

"어머나, 어머나!"

"나, 죽어! 나 죽어!"

비록 천연덕스럽고, 속되기 짝이 없는 음률이라 해도 아랫도리가 짜릿해지는 풋풋한 흥들을 남김없이 돋워 마지않는 것이다.

김상도 회장은 생각한다.

그 무렵이 언제던가. 영림그룹 런던 지사장으로 재직중, 알프스 상공에서 산화한 김상수의 일주기(一週忌)를 마친 그 다음 날이던가. 김상도 회장은 소복 차림으로 제를 지내는 홍주리의 말할 수 없이 희고 깨끗한 자태에서 참으로 의뭉스런 욕망을 느끼고 얼마나 혼자 얼굴을 붉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