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심 문화 No! 경기도 중심 문화 Ok!'

서울 중심의 문화지도가 바뀌고 있다. 경기도내 각 시·군들에 잇달아 대형 공연장이 개관되고 수준높은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면서 공연문화를 서울 중심에서 경기도 중심의 공연문화로 바꾸고 있다. 여기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여유있는 작업을 위해 숨막힐 듯한 서울을 벗어나 파주와 양평, 고양 일산, 안성, 화성 등 도내 각 지역으로 거처(작업공간)를 옮기면서 지역 문화예술활동이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이처럼 대형공연장과 문화예술가들의 '탈(脫) 서울'바람은 그동안 서울이 중심이 됐던 문화지도를 경기도 중심의 문화지도로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양평의 경우에는 현재 1천300여명에 달하는 문화예술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안성은 4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특히 37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파주 헤이리 마을은 이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공연 문화지도 바꾸는 대형공연장
경기도 지역에는 지금 경기도문화의전당을 비롯해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의정부예술의전당, 고양 덕양어울림누리 등 대형 문화공간이 잇따라 등장, 지역공연문화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일부 지방공연의 경우에는 서울 사람들이 이들 지역으로 원정 관람을 할 정도로 수준높은 작품들을 잇따라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고 있다. 또한 이들 공연장들은 이제는 서울에서 공연한 작품의 순회공연에서 벗어나 작품들을 자체 제작하거나 직수입해 지역 공연문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성남아트센터의 경우는 지난해 6월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국내에 첫 선을 보인 '미스 사이공'을 유치, 저녁때마다 몰려드는 차량과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뮤지컬계의 블록버스터로 불리며 '오페라의 유령', '캐츠', '레미제라블'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히는 '미스 사이공'이 양재동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LG아트센터 등 서울의 쟁쟁한 공연장을 제치고 국내 초연무대로 성남을 택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놀라웠다.

6월28일 개막 이후 55회 공연에 8만3천800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이 공연은 서울 관객이 절반에 육박했고 심지어는 부산과 대구, 광주, 제주에서도 원정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산문화예술의전당(안산문예당)도 지역성을 바탕으로 한 순수 창작공연으로 승부, 지역공연문화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8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6 서울세계도서관정보대회'에 안산문예당의 두번째 창작 뮤지컬 '꼭두별초'가 특별초청됐다. 지역 공연장에서 자체 제작한 작품이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되기는 아주 이례적인 일로 '꼭두별초'는 2005년과 2006년 열린 12회 공연에서 '전회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경기도문화의전당이 지난해 7월께 선보인 '화성에서 꿈꾸다' 역시 1만3천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지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경기지역문예회관협의회(이하 경문협)가 제작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도 지난해 11월 부천 시민회관과 고양어울림극장 공연, 12월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의정부예술의전당 공연에서 잇따라 90%이상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는 선전을 펼쳤다. 경문협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공동제작 시스템을 통해 저렴하면서도 수준높은 공연을 선보였다는데 있다. 경기지역 공연장간에 구축된 인프라를 토대로 한 공동제작으로 제작비 절감과 저렴한 티켓가격 책정을 가능케 해 오페라를 보고 싶어도 고가의 티켓때문에 엄두를 못냈던 도민들을 공연장으로 불러 모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문화공간의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남한강을 끼고 광주시로 이어지는 양평군 강하면 일대 국도변은 미술관과 갤러리, 패션문화공간이 자리잡은 문화예술거리다.

가족 리조트 겸 복합문화공간인 '바탕골 예술관'과 국내 유일의 사진 전문 갤러리인 '와 갤러리', 의사가 자신의 소장품을 모아 만든 '닥터박 갤러리', 석재사업가가 사재를 털어 만든 조각전문 갤러리 '갤러리 아지오', 미술가 부부가 작업장을 개조해 만든 갤러리형 카페 '몬티첼로' 등 개성 강한 문화공간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이처럼 양평이 새로운 문화예술거리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면 오갈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화가, 조각가, 도예인, 시인, 소설가 등 문화예술인 400여명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예술 기반을 갖췄기 때문이다. 현재 양평에는 1천여명이 넘는 문화예술인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성에는 조각가들의 작업실이 많이 위치해 있다. 조각가들이 손쉽게 필요한 재료나 공구를 구할 수 있다는 이점과 함께 의왕~과천간 고속도로로 인해 한적하면서도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장점때문에 최근 화성 구석구석에는 조각가들의 창작 작업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말 경기문화재단 기획의 '미술로 이웃되기 GRAF 2006'의 한 프로젝트 참여작가 신원재의 '화성지역 예술가 작업실 지도 그리기'를 통해 파악한 명단에는 이윤숙, 김도근, 전경선, 이소윤, 이종성, 강성훈, 안재홍, 신원재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화성에 창작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학인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손꼽히는 안성의 경우에는 고은 시인이 80년대부터 터를 잡기 시작해 드라마 작가 김수현, 무용가 홍신자, 연극인 김아라, 시인 황청원씨 등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또 고양시에는 현재 500여명의 화가, 조각가, 공예가 등 많은 미술인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파주 헤이리마을

파주 헤이리는 '탈(脫) 서울' 문화지도 바꾸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동안 서울에 거주하던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헤이리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 이곳 15만평의 부지에는 작가와 미술인, 영화인, 건축가, 음악가 등 37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등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출판사 한길사 대표이사인 김언호씨가 1994년부터 구상해 1997년 발족한 파주 헤이리마을의 이름 '헤이리'는 파주지역에 전해져오는 전래농요인 '헤이리 소리'에서 땄다. 현재 헤이리 마을은 서울을 비롯한 경기·인천지역 주민들로부터 일일 문화나들이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자연 친화적이고 나지막한 건물들이 모여있는 복합문화공간인 이곳에서는 사시사철 다양한 공연과 전시가 열린다.

▲헤이리마을의 명소들
헤이리 마을의 '북하우스'는 출판사 한길사 대표이사인 김언호씨가 운영하는 토털 아트 스페이스다. 음악, 미술, 책, 음식에 대한 갈증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어른, 아이 모두를 위한 책들이 빼곡하고 1층에 햇살 좋은 식당이 있다. 매달 토요일 오후에는 작은 음악회도 연다.

헤이리 마을에서 가장 큰 전시공간인 '93뮤지엄'은 국내 최초의 인물 미술관이다. 갤러리와 함께 카페, 한옥펜션도 운영, 헤이리에서의 하룻밤을 즐길 수 있다. 헤이리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한향림 갤러리'는 도자기 전문갤러리로, 1층에서는 우리 항아리의 고전적인 멋을, 2층에서는 현대도예를 감상할 수 있다. 아이들이 폭 빠져 버리는 공간은 쌈지에서 운영하는 '딸기가 좋아'다. 딸기, 레몬, 수박, 똘밤, 똥치미 등 캐릭터들과 한데 어울려 놀 수 있다.

또 맞은 편에 위치한 '타임 캡슐'은 60~70년대 아련한 기억들을 눈앞에 그대로 되살려놓는 추억의 공간으로 제1전시관 근대생활관과 제2전시관 전통생활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조각가 오채현 관장이 20여 년 동안 모아온 생활물품과 자료들을 전시한 개인 박물관이다.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는 인도, 서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75개국에서 수집한 600여개의 악기가 전시돼 있다. 눈으로만 보는게 아니라 이국의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이밖에도 수많은 문화공간들이 즐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