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전두현 프리랜서·dhjeon@hotmail.com
지난해 2월 여중생 노래방 도우미가 경찰에 적발돼 충격을 줬다. 청소년의 탈선 연령이 갈수록 낮아지고 특히 여성 취업 현실이 어려운 현실 때문일까. 전국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 도우미의 숫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할 말이 있다. 도우미 일이 좋아서, 또 그 자체가 즐거워서 접대부 일을 하지는 않는 것. 세상이 이들을 유흥가로 끌어들였고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흘러들었단다. 남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지만, 정작 이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면 돈은 '쉽게' 벌리는 것이 아니었다. 짓궂은 남자 손님이라도 만나면 기분은 엉망이 돼 버리지만, 그래도 술자리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 그만한 고역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밤을 생존 무대로 삼는 이들에게도 양지를 지향하는 꿈이 있다. 내일의 희망이 있고 과거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이들의 새해 희망을 엿보기 위해 하루를 직접 따라다녀 봤다.<편집자 주> 2006년 12월29일 오후 6시께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의 유흥가 골목. 영하 7~8도의 매서운 추위에도 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네온사인 불빛들이 어지럽게 반짝거렸다. 마침 '한잔하기 가장 좋다'는 금요일인데다 막판 송년회까지 겹치면서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한잔 기울이려는 사람들로 술집들은 만원이었다.

보도방 동행 취재에 앞서 혼자서 이것저것 수첩에 적어봤다. 도우미들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 기분 나쁜 질문으로 그녀들에게 상처를 주면 어쩌나 싶어서다. 막상 질문들을 정리해서 살펴보니 역시나 부담스러운 질문이다. 보도방 일을 왜 시작했는지, 한달 수입은 얼마나 되고 또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등 등. 하지만 부딪혀 볼 밖에….

어렵게 수소문해 연결된 보도방 업주 A씨에게 전화가 왔다. 수원시청 앞에 하얀색 승합 차량을 타고 비상등을 켜놓고 있으니 빨리 오란다. 몇분 뒤 A씨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차량에 올랐다. 밤새 일하는 직업이어서 그런지 A씨는 연방 하품을 하면서 "날씨도 추운데 고생"이라며 먼저 인사를 건네더니 "아가씨들 출근 때문에 집 앞으로 직접 데리러 가야 한다. 늦었으니 빨리가자"고 보챘다.

#수원 인계동에만 도우미 2천명 활동

첫번째 도우미를 태우기 전까지 A씨와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수원 인계동에만 50여개의 보도방과 2천여명의 도우미들이 활동중이다.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다들 속 깊은 사연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손님하고 대화 잘 통하고 얼굴이 예쁘면 한달에 1천만원도 벌고 '초이스(손님의 지명)'가 잘 안되는 도우미들이더라도 최소 한달 300만원을 벌 수 있으니 일반 직장인들에 비하면 수입 면에서는 짭짤한 편이라는 설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손님 접대비용 7만원 중에 2만원을 보도방에서 챙기고 밤자리 까지 이어지는 2차비용 20만원 가운데 2만원은 유흥업소에서, 1만원은 보도방업주가 챙기면 나머지 돈은 고스란히 도우미의 몫이다.

또 출근 다음날 바로 현금으로 계산이 끝나는 점도 도우미들에겐 매력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밤새 술을 마시는 직업인지라 "위에 구멍이 수십 개"인 것은 기본이고 체력 보충을 위한 보신음식도 잘 챙겨먹어야 한단다.

이렇게 대화가 오가는 도중에 A씨의 휴대전화 3대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모두 유흥업소에서 걸려온 전화들로 빨리 도우미들을 데려다달라는 요청이었다.

보도차량이 골목 주택가에 멈추자 짧은 미니스커트에 짙은 화장을 한 도우미 B씨가 올라탔다. 그녀는 덜덜 떨면서 차량에 올라탔는데, 추운 날씨와 전혀 안어울리는 '전투복(?)'이 애처로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보도차량은 업소의 재촉 때문인지 신호도 무시한 채 쏜살같이 인계동으로 내달렸다.

처음엔 경계하는 모습 역력
말문트이니… 버거운삶 얘기꽃


#"돈벌어 아빠 빚 다 갚았으면…"

 
 

기자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소속을 밝히고 취재 방향을 설명했지만 B씨는 기자를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옆에 있던 A씨가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인터뷰해도 된다"고 지원 사격을 하자 그녀는 조금씩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B씨가 수원에 온 것은 약 5년전. 초등학교때 목포에서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올라온 뒤 그녀의 삶은 하루 하루 힘든 나날이었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았던 그녀의 가족. 하지만 고등학교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갑작스럽게 하루아침에 가정이 풍비박산이 났다. 결국 돈을 벌기위해 고등학교때부터 다방에서 커피배달을 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단다.

낮에는 커피배달하고 밤에는 자기가 직접 시간외 티켓을 끊어 유흥업소 도우미일을 하는 투 잡(Two-Job)을 시작했다. 하지만 두가지 일을 하기에는 너무 힘들어 결국 다방 일은 포기하고 이렇게 유흥업소에서만 일한 것이 벌써 5년째라고 했다.

"주민등록 말소 된지 오래됐어요. 아버지 빚 때문에 다시 살리지도 못하고. 어쩌다 만나면 손찌검이니 혼자 이렇게 수원에서 살 수밖에요." B씨는 이내 한숨을 쉬면서 담배 한 모금을 물었다. "이짓을 하고 싶어 하는 여자가 어디 있나요. 평범하게 직장생활도 하고 싶은데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가진 기술이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요."

돈은 조금 모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돈이요? 쉽게 버니까 쉽게 쓰게 되데요. 남자들을 상대로 하니까 옷 값이 많이 나가요. 그렇다고 남들처럼 호빠(남자 접대부가 있는 유흥주점) 같은데 가는 것도 아닌데…. 참 먹고 살기 힘들어요."

B씨는 마지막으로 "새해 소망이 있다면 돈 많이 벌어서 아빠 빚 다 갚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면 좋겠어요. 또 이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좋은 남자 만나 결혼도 하고 싶어요"라며 신년 소망을 밝혔다. 이런저런 대화가 10분정도 흘렀을까. 어느새 손님과 약속된 유흥주점 앞에 차가 멈췄고 "기자님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그녀는 이날 첫 일을 나섰다.

보도차량은 또다른 도우미를 태우기위해 권선동으로 향했다. A씨는 "지금 만나러가는 아가씨는 어리기도 어리지만 얼굴이 예뻐 인계동에선 그래도 인기가 꽤 있다"고 했다.

'술체력' 위해 보신음식까지 챙겨
수원 인계동에만 2000여명 활동


#"마음 따뜻한 남자 어디 없을까요"

 
 
보도차량은 한 아파트에서 도우미 C씨를 태웠다. C씨는 차에 타자마자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붙임성 있는 성격 탓인지 C씨와의 대화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수원이 고향인 C씨는 스무살 나이 답게 앳된 얼굴에 예쁘게 생겨 누가 봐도 호감이 가는 얼굴이다. 현재 대학생인 그녀는 낮에는 학교를 가고 밤에는 보도방 도우미 일을 하고 있단다.

"이거 실명 나가는거 아니죠? 부모님하고 남자친구가 알면 안돼요. 저 지금 과외하러 가는줄 알고 있거든요."

그녀도 이미 고등학교때 부터 유흥업소에 드나들기 시작했단다. 철 없을때 친구 따라서 이 일을 시작했던 C씨는 매일 출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친구 만나는 날 빼고는 거의 빠짐없이 출근한다.

학교 다니랴 도우미일 하랴 힘들지 않냐고 묻자 "돈을 월 500 이상 버는데 쉽게 뿌리칠 수 있나요. 언젠가는 그만두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 생활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돈 많이 버니… 헤프게 쓰데요"
수입짭짤 쉽게 뿌리치지 못해


인근에서 또다른 도우미 D씨를 태웠다. 강원도에서 돈벌러 왔다는 D씨도 고등학교때 부터 계속 도우미일을 해왔다.

"요즘은 송년회 단체가 많아 초이스도 없고 돈벌이가 꽤 괜찮아요. 이렇게 바쁠때 열심히 돈벌어야죠. 그런데 어떻게 된 게 버는것 보다 쓰는게 더 많은지…."

D씨는 얼굴이 조금 예뻐서 그런지 다른 도우미보다는 수입 면에서 꽤 괜찮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밤새 일하고나면 스트레스가 심해 가끔은 호빠에서 남자도우미를 불러 놓고 즐긴다고 한다. 그녀만의 피로 해소법인 셈이다. 결국 옷이며 술값 등 지출이 크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저 뿐만이 아닐 거예요. 다들 호빠 많이 다니거든요. 가서 남자들이 우리한테 했던 것 이상으로 놀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미도 있고해서 가끔 다니죠."

일반 개인회사 경리사원도 해보고 미용실과 편의점 등에서 일해봤지만 몇배나 더 벌 수 있는 도우미를 선택했고 벌써 2년의 시간이 흘렀다. D씨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을 부모님 빼고 두명의 언니가 알고 있다고 전했다.

 
 
D씨는 마지막으로 "아직 결혼 생각은 없지만 마음이 따뜻한 남자를 만났으면 한다"며 "또 돈도 많이 벌어 부모님 해외여행 한번 보내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도우미들과의 인터뷰가 약 두시간 정도 지났을까, 맨 먼저 출근했던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첫 테이블이 끝났으니 데리러 오라는 전화다. B씨가 보도차량에 오르더니, 그래도 구면이라고 기자에게 "아직도 여기 있느냐"고 반가운척 한다. 그리고는 이내 인근 유흥주점 입구로 총총히 사라졌다.

밤이 깊어갈수록 인계동 유흥가는 더욱 활기가 넘쳐났다. 다들 한해동안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부어라 마셔라를 반복하면서 내년을 위한 '파이팅'을 외쳤다.

기자도 조용히 '파이팅'을 외쳤다. 오늘 만난 그녀들에게도 가슴속에 숨겨둔 희망이 현실이 되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