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범인은 어디로 숨어버린 것일까' 지난해 11월 16일 발생한 인천 십정동 부부살해사건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50여명이 넘는 인천부평경찰서 전담팀과 인천지방경찰청 관내 8개 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 공조 수사에 쉬는 날 없이 투입되고 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까지 나온 단서는 범인이 범행 당시 신었던 운동화 발자국과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우의 정도. 지문과 머리카락 등 단서가 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50일째 밤샘 수사를 하며 범인의 뒤를 쫓는 경찰과 아무런 물증도 없이 범행 후 홀연히 사라진 범인. 쫓고 쫓기는 이들의 두뇌싸움이 지리하게 전개중이다.

◇사건의 전말
지난해 11월 16일 오전 8시께 인천 부평구 십정동 다세대주택 2층 거실에서 집주인 김모(56)씨와 아내 임모(51)씨가 흉기로 여러 차례 잔인하게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집주인 김씨는 37차례, 부인 임씨는 7차례나 예리한 칼로 잔혹하게 찔려 살해됐다. 시신 옆에는 피묻은 1회용 비닐 우의가 놓여 있었고 방안 서랍이 열린 채 어지럽게 뒤진 흔적이 있었으며 거실 바닥엔 피묻은 운동화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가족들의 진술로 미뤄 범인은 부엌 찬장에 놓아두었던 1억원 가량이 예금 돼 있던 적금통장을 가져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사방향
경찰은 수사 초기 숨진 부부가 잔혹하게 찔려 살해된 점으로 미뤄 원한관계에서 비롯된 살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펼쳤으나 특별한 혐의점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지 못했다. 주변 탐문수사 결과, 이들 부부는 뚜렷한 채무관계가 없고 동네에서도 조용하게 지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경찰은 1억여원의 잔액이 있는 김씨의 적금통장이 사라진 점으로 미뤄 단순 강도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뒤 주변 동일 전과자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 돈을 출금해간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이 또한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범행의 폭력성이 더욱 두드러져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이 아닌 단순강도 살인의 경우에도 흉기를 잔인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경찰측 설명이다.

또 초기 수사대상에 올랐던 S대학교 의과대학에 재학중인 큰아들(26)과 지방국립대학 수의학과에 다니는 둘째아들(24)들도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입증되면서 용의선상에서 멀어졌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우의, 영화 '공공의 적' 모방 범죄인가?
현장에서 발견된 중요한 단서인 우의. 사건 당일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범인은 우의를 입고 들어와 살인을 저질렀다. 영화 '공공의 적'에서 극중인물 조규환이 노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하던 장면이 이번 십정동 부부살해사건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경찰은 이같은 점으로 미뤄 이를 모방한 범죄의 관련성 여부도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난항에 빠지고 있다. 이 우의는 흰색으로 미세한 체크무늬에 단추가 3개 달린 독특한 디자인으로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지 않는 희귀한 우의다. 경찰은 국내의 모든 우의 제조업체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으나 한국에서 제조된 우의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내고 중국 등 외국에서 우의를 수입하는 업자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살인사건 주변 주택가 민심 흉흉 , 각종 소문들 나돌아
부부살해사건이 발생한 십정동 하정초등학교 주변 주택가는 이번 사건으로 온갖 소문들이 나돌고 있다. 숨진 김씨의 부인 임씨가 성인나이트, 카바레 등 유흥업소를 자주 출입했다는 소문부터 사건 며칠 전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과 부산을 다녀왔다는 소문까지 이들 부부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동네에 나돌고 있다. 민심도 흉흉한 상태다. 지역 주민들은 "동네에서 이런 큰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사건 발생 한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을 졸이며 범인이 잡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경찰수사 장기화 되는 이유
이번 십정동 부부살해사건이 장기화 되는 이유는 뚜렷한 목격자, 증거 등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사건도 아니어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살인사건의 경우라도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이거나 뚜렷한 물증이 있으면 검거율이 80%를 넘지만 그외 살인사건은 범인 검거에 한달 이상이 넘는 장기수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경찰청 국감자료를 보면 2000년 이후 수사본부가 설치된 강력사건 중에 아직껏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은 전국적으로 14건에 이른다.

2004년 2월 8일 발생한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같은해 화성에서 발생한 여대생 살인사건, 올해 5월30일 대전에서 발생한 금은방 강도살인사건 등이 주요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특히 이런 장기사건의 경우 경찰의 힘 보다는 시민의 제보나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 여죄가 나오면서 범행의 전말이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십정동 부부살해사건, 아직 경찰은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한 상태다. 지난 22일에는 범죄심리학 박사 등 전문가까지 동원해 사건 수사에 대한 경찰 자체 회의를 갖는 등 경찰도 다각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시각에도 경찰의 밤샘 회의를 비웃듯 십정동 부부살해 사건의 범인은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