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닥치면서 수북하게 쌓인 산속의 눈. 강 한복판까지 두껍게 언 얼음. 은빛 빙판 위로 흥겨운 동요가 흘러 다닌다. 산정호수에 마련된 얼음썰매, 스케이팅을 즐기며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과 아이들이 한겨울 추위도 잊었다.

명성산이 휘장처럼 둘러싼 산세가 만들어낸 산정호수. 잘생긴 남자처럼 선이 굵은 암봉이 호반을 감싼 산정호수는 6·25 전에 김일성 별장이 있었을 정도로 빼어난 운치를 자랑했다. 그 운치는 한겨울 설경 속에서 더욱 빛난다. 그 이름도 '산에 묻힌 우물'이란 뜻으로 산정(山井)호수라 불린다.

산정호수는 1925년 농업용수를 이용하기 위해 축조된 호수. 이곳이 인공호수라는 사실이 왠지 낯설게만 여겨진다. 얼음판을 지치며 얼굴을 벌겋게 상기시킨 아이들의 표정과 팔짱을 끼고 조심조심 잰 걸음을 치는 연인들의 표정이 너무도 다정해 보인다.

▲ 산정호수에서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
산정호수는 겨울 내내 7만 평에 이르는 수면이 꽁꽁 얼어붙는다. 호반을 따라 난 4㎞에 이르는 산책로의 나무도 눈옷을 입은 채로 하얗게 빛나는 조형물처럼 보인다. 호수 한쪽의 명성산도 흰 눈을 뒤집어쓰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겨우내 산정호수는 추억과 동심의 나라로 변신한다. 이른 아침이면 꽁꽁 얼어붙어 수정빛으로 변한 호수면 위에 꼬마들의 얼음썰매가 놓인다. 그래도 썰렁하지도 춥지도 않다. 호반 위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손이 꽁꽁꽁, 발이 꽁꽁꽁…'. 은빛 빙판 위로 흥겨운 동요가 흐른다.

논에 물을 대고 얼음지치기를 즐겼던 세대들에게 산정호수는 추억과 동심의 나라 그 자체. 어릴 적 겨울만 되면 서둘러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 개구쟁이들은 손등이 터지는 줄도, 끼니때가 지났는지도 모르고 언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면서 하루 종일 신나게 얼음을 지쳤다. 나무판자 밑에 철사 두 줄을 고정시킨 추억의 썰매는 그 시절 장난꾸러기들의 소중한 재산이었다.

눈썰매와 달리 수평인 얼음 위에서 지치는 얼음썰매를 제대로 타려면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속도조절과 회전 능력에 따라 실력 차이가 난다. 꽁꽁 얼었던 얼음이 녹아 얇게 된 허방다리도 한달음에 건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매번 빠져서 진흙탕을 뒤집어쓰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은 눈썰매의 그늘에 가려 얼음썰매를 지치는 아이들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지만 산정호수를 찾으면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아이들도 그냥 미끄러져 내리는 눈썰매보다 얼음썰매를 더 재미있어 한다. 회전이 자유자재인 얼음썰매는 엄청난 속도감과 스릴을 즐길 수 있다. 눈썰매보다 안전해 남녀노소 누구나 겁을 내지 않고 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산정호수는 빙상레포츠의 천국이다. 산정호수에서 스케이트장과 썰매장으로 조성된 곳은 산정호수 유원지 앞 오리보트 선착장 일대다. 길이 500m 정도의 트랙이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산정호수는 빙상레포츠의 천국이다. 이곳은 아이스하키 등 빙상선수들의 동계훈련장으로 사용되곤 한다. 워낙 추운 곳이어서 수면이 25㎝ 정도로 완전히 얼어붙는다. 온가족이 빙상레포츠를 즐기기에 안성맞춤. 썰매로 경주를 즐길 수도 있다. 온가족이 손을 허리에 붙이고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마치 오리 한 가족이 나들이 나선 풍경처럼 정겹다. 얼굴 가득 동심이 차오른 아저씨가 마냥 즐거워하며 힘차게 얼음을 지친다.

썰매장과 스케이트장은 산정호수 관광지부(031-532-6135)에서 관리하며 입장료는 없고, 스케이트와 얼음썰매를 각각 시간당 5천원에 대여해주고 있다. 스케이트장 한쪽에는 떡볶이와 컵라면 등을 판매하는 포장마차도 대여섯 군데 있다. 포장마차 안은 붉게 상기된 볼을 비비며 뜨거운 어묵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몸을 데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 자인사 대웅전.
호수 상류에서는 얼음낚시도 가능하다. 전문 낚시꾼들이 붕어를 잡기도 하지만 아이들을 동반했다면 얼음판에 구멍을 뚫고 가벼운 채비를 이용해 '겨울의 요정' 빙어 손맛을 볼 수도 있다. 빙어낚시 채비는 산정호수 상가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얼음썰매에 신이 나 동심을 즐겼다면 자인사로 눈길을 돌려보자. 새로 만들어진 깨끗한 대리석 계단을 오르면 주변의 소나무 숲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또한 대웅전 뒤로는 누각을 지어 샘물이 흘러내리도록 꾸며진 연꽃무늬 잔 모양의 샘터가 있다.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자인사에서 목을 축인다. 자인사에서 내려와 가족호텔 쪽에서 산책로로 들어설 수 있다. 호반의 설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잊었던 서정에 취해보는 것도 겨울여행의 묘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며 함박웃음을 터트리는 행복한 여행의 완결편을 장식하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여행수첩
■ 가는 길=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해 구리를 빠져 나간 뒤 47번 국도를 타고 30분 정도 직진하면 베어스타운. 여기서 47번 국도를 타고 25㎞ 가량 직진하면 일동. 일동 용암천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3㎞ 정도 가면 군부대 삼거리. 여기서 좌회전 후 8㎞ 정도 직진하면 산정호수.

■ 잠자리=산정호수 인근에 최신식 시설을 갖춘 펜션이 생겼다. 펜션허브빌(031-533-1550)을 비롯해 3곳 정도의 신축 펜션이 있지만 비싸다. 산정호수에서 숙박을 할 경우 호수 전망이 좋은 산정호수 가족호텔(031-534-4061)을 추천.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고 산정호수 중심부에 자리 잡아 주변 전망이 뛰어나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호텔을 둘러싸고 있어 편안한 휴식이 보장된다.

■ 맛집=산정호수 등산로 입구에 있는 등산로가든(031-532-6235)의 버섯전골을 추천한다. 명성산 인근에서 직접 채취한 야생버섯으로 끓여내기 때문에 맛이 담백하고 국물이 시원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또한 이곳의 별미인 우렁이된장국도 일품이다. 버섯전골 1만원.

포천의 명물 이동갈비도 강추. 이동의 갈비촌 중에서도 30년이 넘게 이동에서 갈빗집을 운영해온 김미자할머니집(031-531-4459)은 깊은 손맛으로 고기 양념은 물론 시원한 동치미와 김치까지 별미로 통한다. 이동갈비 2만4천원, 동치미국수 3천원.

여행 TIP
■ 일동 유황온천에서 온천욕

산정호수에서 지척인 일동에 제일온천, 용암천, 일동사이판 등 온천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일동 일대의 온천수 성분은 유황. 유황온천은 달걀 썩는 냄새와 비슷한 향취가 난다. 연골이나 근육, 피부세포에는 본래 유황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이들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특히 효험이 있다. 이중에서도 일동제일온천(031-536-6000)은 일동 인근에서 유일하게 노천탕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수질이 가장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