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사회는 부동산으로 시작해 부동산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서민과 월급쟁이들 사이에서는 이제 평생을 저축해도 내집 마련을 할 수 없다는 좌절과 분노에 늘어나는건 한숨과 주름살 뿐이었다.

서민들의 분노를 살만큼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아파트 분양가를 인하하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방안이 나왔다. 지난해 11월29일 한나라당은 홍준표 의원이 대표발의한 '대지임대부 주택분양방식'을 당론으로 정한데 이어 열린우리당도 저가 아파트 공급을 위해 김태년, 이계안 의원이 발의한 '환매조건부 분양제' 도입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 이 정책들은 도입될 경우 아파트 분양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한편에서는 실현 가능성이나 집값 안정 효과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른바 '반 값 아파트 논란, 과연 실현 가능할지 아니면 정치적인 수사로 끝날 것인지 알아보자.

▲실현 가능성은 있나

박헌주 대한주택공사 국토도시연구원 원장은 "정부 방침만 정해진다면 정부가 추진중인 송파 신도시 등에 적용할 수 있다"며 "강남 50평형대 아파트의 경우 현재 15억원에 구입할 수 있지만 반값 아파트가 도입되면 전세보증금(약 6억원)을 포함해 8억~9억원이면 살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이 높은 서울이나 경기 인천권에서 먼저 시행하고, 대도시 또는 주변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특히 부동산 투기가 우려되는 지역으로서 토지를 전면 매수 또는 수용이 가능한 주택공영개발지구가 적합하다. 아울러 계획적 개발이 필요한 행복도시나 혁신도시, 공공청사 등에서 시범적으로 적용하면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은 반값 아파트 제도가 실효를 거두려면 국공유지여서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하고, 해당 지역 주택에 대한 수요가 강남만큼 많을 때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경제와 맞지 않는데다 재원 조달 및 택지 확보 문제 등이 있어 현실적으로 이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이기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경기도지회 사무국장은 "대지 임대부 분양주택의 경우 건물만 소유하는 것으로 기존 임대아파트와 비슷한 개념이고 환매조건부 분양 역시 임대아파트와 같은 개념"이라며 "지금도 임대아파트를 계획대로 다 짓지 못하고 있는데 반값 아파트 공급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이어 "반값 아파트를 도입해도 기존 아파트에 적용되지 않아 주택시장이 양극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즉, 반값 아파트가 기존 아파트보다 시세 차익이 낮을 경우 반값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질 것이며 건물과 토지를 함께 소유하고 싶어하는 국내 정서상 반값 아파트는 서민이, 기존 아파트는 부유층이 사는 식으로 시장이 양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대효과와 수요 전망

대지임대부 주택분양 방식이나 환매조건부 분양제는 분양가 인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수도권에서 공급되는 아파트는 분양가에서 택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고 70%에 달해 대지임대부 주택 분양이 이뤄질 경우 분양가를 절반 이상 낮출 수 있다.

토지와 건물을 모두 분양하되 분양가를 민간아파트 대비 30~40% 싸게 공급하고 팔 때는 공공에서 주택을 매입하되 매입 가액은 물가상승률만 감안하고 시세 차익을 환수하는 방식인 환매조건부 분양도 아파트 분양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값 아파트를 시행하면 분양 가격에 땅값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 분양주택보다 50~60% 정도 싸게 집을 공급해 서민주거안정을 이룰 수 있다. 개발이익을 환수하므로 건설회사의 개발이익 사유화를 막아 투기가 억제되고, 주택의 개념을 소유에서 거주로 바꿀 수 있는 기대효과가 있다.

또 토지 소유자의 과도한 개발 욕심을 억제할 수 있어 도시를 쾌적하고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반 값 아파트 제도가 정착되면 임대료 수입으로 도시개발의 재원을 조달할 수 있다.

서민들은 토지임대율이 금융기관 예금금리 수준이어서 주택 구입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여유자금이 있으면 예금이자로 월세 부담이 가능하며, 땅값 부담이 적기 때문에 일반 분양아파트와 동일한 주택을 지역에 따라서는 반값에 장만할 수 있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의 수요 전망은 밀집 지역 위주로 시행하므로 수요 부족에 의한 미분양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의 중간형태로서, 거주 목적으로 내집을 마련할 서민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토지값 부담 등으로 반값 아파트가 소규모로 공급될 경우 궁극적 목표인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영범 하나부동산 팀장은 "아파트를 싸게 분양해 주변 집값을 낮추려면 막대한 물량이 공급돼야 한다"며 "특정지역에 소량만 공급한다면 로또 복권이나 다름없어 오히려 투기를 재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국공유지가 아닌 일반 투기지역에 적용하면 실수요자의 이득이 없다는 지적이다.

예를들어 판교 33평형의 경우 분양가는 3억7천300만원이지만 반값 아파트로 공급하면 땅값(2억1천만원)을 뺀 건축비(1억6천300만원)만 내고 분양을 받을 수 있다. 대신 매달 96만원(2억1천만원×연 5.5%)의 토지임대료를 내야 한다. 국공채 저리이자(연 4.8%)를 적용해도 월 84만원이다.

이를 같은 평형의 판교 10년 임대와 비교해도 비슷하다. 그러나 임대의 경우는 10년 뒤면 분양 전환을 받아 땅과 집을 소유하게 된다. 반값 아파트가 임대아파트보다도 못하다는 얘기다.

▲반값 아파트 문제점

정치권에서 '백가쟁명'식의 부동산 정책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반값 아파트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섰다. 정부는 정치권에 등 떠밀려 '울며 겨자먹기'로 시범실시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분위기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토지 임대부 분양제' 뿐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환매조건부 분양제'도 정부는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정부에서 내놓은 토지 임대부 분양제 문제점은 먼저 우리나라는 택지로 활용할 국·공유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국유지가 넉넉한 싱가포르 등과는 다르다는 얘기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도 연두 기자회견에서 "주한미군 부지 등 공공용지가 충분하다는 주장이 있는데, 거기에는 다 별도의 용도가 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은 택지를 마련할 수 있더라도 시행 과정에서 생길 막대한 재정부담이다. 주거 문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재정 투입에 있어 우선순위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또 겉으론 분양가가 낮아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택의 자산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에 임차기간이 끝나고나면 세입자의 이익이 전무하다는게 정부의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실제 운영과정에서 일부 입주자가 계약만료 후에도 퇴거를 거부하거나 임대료 납부를 거부하는 등 집단행동을 통해 택지소유권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환매조건부 분양제와 관련, 문제점도 짚었다.

공공택지에 지어진 주택은 이미 분양가 상한제를 통해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어 분양가를 추가로 내릴 여지가 적다고 지적했다. 분양가 인하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인프라 구축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면 분양가를 낮출 수 있지만, 이 경우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입주자의 분양가 부담액은 현행 공공분양주택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분양가를 좀 더 낮추더라도, 자본이득을 포기하는 대가로는 충분치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다음은 의무거주기간을 둘 경우 주거이전의 자유가 크게 제약돼 입주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집값이 크게 오르는 시기에 이같은 반발이 거세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무주택자 등을 위해 반값 아파트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할 경우 '집을 이미 가진 사람'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게 정부가 우려하는 대목이다.

하나은행 동수원지점 관계자는 "주택정책을 시장이 아닌 복지의 관점에서 접근하더라도 형평성이라는 또 하나의 덫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밝혔다.

▲외국사례

토지임대제는 중앙정부 주도형과 지자체 주도형이 있다.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나라로는 호주 캔버라와 이스라엘, 홍콩, 싱가포르 등이 있으며, 지자체가 시행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스웨덴, 독일, 프랑스, 영국, 핀란드 등 유럽국가와 영연방국가들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전 국토의 70%), 네덜란드 암스테르담(80%), 핀란드 헬싱키(68%), 호주 캔버라(100%), 싱가포르(90%) 등이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중앙정부가 사업자에게 토지매입비 뿐만 아니라 개발비와 관리비의 95%를 저리 융자한다. 핀란드 헬싱키는 시 전체면적의 68%를 토지임대부로 공급함으로써 주택가격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