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카인의 아침 ⑤

저녁 일곱 시인데도 아직 대낮 같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느낌이다. 그렇긴 해도 베트남 남부 메콩 델타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우선 땡볕 속의 비닐하우스처럼 얼굴을 익히는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비릿한 간장 냄새는 마찬가지다. 공기 속의 습기가 있는 베트남 남부가 특유의 열대 몬순이라면, 하노이가 있는 통킹 델타 지역은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 기후다.

우리나라 늦여름 날씨다. 늦여름 저녁녘이면 더위를 내쫓는 아주 쾌적한 바람이 불 듯, 통킹 만의 훈풍도 늘어졌던 야자수 잎새를 선뜻선뜻 일으켜세우고 있다.

박준호는 핸드 캐리어했던 춘란분을 세관에 입수당한 일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공식적인 방역 검사를 받지 않고서는 통관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특별한 물건이라고 통 사정해도 관계관은 고개부터 절절 흔들 따름이다. 하긴 기력이 쇠진하다 못해 입사귀가 늘어진 춘란을 베트남이라고 해서 살려 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기왕 죽일 바에야, 눈에 띄지 않게 처리되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지도 모른다. 박준호는 그래도 마음이 불편하고 허전하다.

3년을 하루같이 금이야 옥이야 동고동락했던 춘란인데….

공항 대합실에 이르자 동방실업 하노이 지사에서 영접나온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동방실업 이니셜이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두 사람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체구가 단단해 보인다. 조봉삼처럼 큰 몸은 아니지만 아주 날렵한 움직임이다.

"어느 분이 박준호 선생이십니까?"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가 세 사람을 번갈아 본다.

"우리 행님,여깃씹니더."

조봉삼이 잽싸게 박준호를 가리킨다.

"아, 박 선생! 영광입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박준호의 손을 두 손으로 움켜쥔다. 아귀 힘이 보통이 아니다.

"날 어떻게…."

"타이거 박,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타이거 박? 그건 옛날…."

"맞습니다. 세계 무술 대회를 제패하실 때 닉네임이죠. 4년 전인가요?"

"아니요."

박준호가 머리를 흔든 다음 말을 잇는다.

"그건…, 세계무술대회가 아니고, 세계 군인호신술 대회였소."

"어쨌거나 무술로 세계를 제패한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때 첫선을 보인 물구나무 쌍발차기 기술은 지금도 신화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만…."

"그 경기를 보셨습니까?"

"아뇨, 얘기만 들었습니다. 후배들한테."

"후배라면…."

"해병대 태권도 교관을 지낸 이치걸…."

"아, 그렇군요. 후암동 수박도회…."

"맞아요, 제가 바로…."

"아, 김만상 선생님 제자 분이시군요."

"맞습니다. 이름은 곽칠복이고 하노이 도장 사범을 맡고 있습니다."

"어쨌든 반갑네요."

"그렇군요. 한데, 부탁이 하나 있소만."

"무슨 부탁입니까?"

"방금 공항에서 물건을 하나 압수당했는데 말이요. 그걸 찾아 줄 수 있겠소?"

"물건이라뇨?"

또 조봉삼이 나선다.

"물건아닙니더. 그거 춘란 화분이라코, 다 죽어 가는 난초 뿌리 아닝교."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