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옥 수원지구협의회장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가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해방 직후 4명의 창립위원으로 시작된 적십자 경기지사는 올해 1만여명의 나눔일꾼이 함께하는 전국 최대규모의 봉사조직으로 성장했다. 경인일보는 적십자 경기지사와 공동으로 도내 곳곳에서 나눔과 봉사정신을 실천하는 적십자 일꾼들의 숨은 사연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교사 퇴직후 참여 1만7천여시간 기록

 
 
매주 목요일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경기적십자 건물에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적십자 봉사원들이 저소득층 가정에 전달할 반찬을 만들기 때문이다. 요리 장소인 5층 조리실은 계란말이를 부치고 나물을 볶느라 매번 북새통이다. 정신없는 조리실 안팎으로 때로는 봉사원들을 격려하고 때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뒤집개를 잡기도 하는 '회장님'이 계신다.

바로 김형옥(77)할머니. 김 할머니는 경기적십자에서 몇 안되는 '스타'봉사원이다. 지금까지 봉사시간만 1만7천여시간. 하루 4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11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봉사활동을 했다는 계산이다. 전국 적십자 봉사원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고 몇년전부턴 수원지구협의회장을 맡아 봉사회를 이끌고 있다.

"나를 위해서 봉사하는 거야. 동정 때문에 하면 안되지. 나와 내 가정을 위해 봉사하는 거라고."

"걸을수 있는 순간까지 계속하고 싶어"

스타봉사원이니까 특별한 '봉사관(觀)'이 있지 않을까 하고 물었지만 대답은 간단했다. 결국 자신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있어야만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김 할머니는 "동정만으로는 봉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개성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교사로 재직하던 중 전쟁이 터지면서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피란왔다. 가족들은 모두 고향에 둔 채였다. 혈혈단신의 고단한 삶 때문이었을까? 김 할머니는 교사직에서 정년퇴직한 뒤 비로소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땐 참 먹고 살기 어려웠어. 학교 오는 애들 중에 도시락 못싸오는 애들도 많았고, 연필 한자루 못사는 애들도 많았지. (학교를)그만두고 나서야 그 아이들이 생각나더라구."

그렇게 시작한 적십자 봉사원 활동이 올해로 34년째에 이르렀다. 주변에선 "이제 좀 쉬시라"는 말도 전하지만 김 할머니는 자신 또래의 노인들이 손자들을 보살피며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한다.

"좀 더 젊었으면, 조금만 더 건강했으면 더 잘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하지. 뭐, 그게 맘대로 되겠나. 그저 걸을수 있는 순간까지만 계속 하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