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철의 시를 '흑인시'로 명명한 윤영천 인하대 교수는 "배인철은 일본 유학시절 흑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뒤 해방 이후 인천 월미도에 있던 흑인부대에 드나들었다"면서 "배인철에게 흑인은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대상이었고, 그것은 우리민족이 일본의 지배 아래 놓인 처지와 다름아니었다"고 말했다.

   흑인문제를 해방직후의 남한 현실과 긴밀히 연결시킨 배인철의 문학세계가 그래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는 "배인철의 작품 수가 워낙 제한적이어서 문제이지만 어느 정도만 확보되면 깊은 연구가 가능하다"면서 "배인철 문학에 대한 논의를 확충하고, 심화시키기 위해선 더 있을 작품 발굴이 관건"이라고 했다.

   윤 교수는 또 인천출신 지식인으로서 자기역할을 다하고자 했으면서도 또한 인천의 당시 강한 계급적 성향의 문단과 맞지 않아 서울로 간 양면적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배인철은 흑인과 일정한 의식연대를 갖고 있었고,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우리나라에 진주한 미군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이 미군 백인장교를 때려눕힌 일화 등에서 잘 드러난다"고 윤 교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