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가 있길래…'.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라이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향해 '검증카드'를 꺼내들면서 순탄대로를 누비던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의 경쟁에 비상이 걸렸다. 여론조사상으로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이 대선을 불과 1년도 안남겨놓은 시점에 자당 소속 후보들끼리 겨누는 '이상경쟁' 조짐이 나오면서 지난 2002년 대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듯한 분위기다.

박 전 대표는 이 전 시장을 향해 작심한듯 뭔가 쏘아올릴 히든카드가 있는듯한 표정이며, 이 전 시장은 '의혹 부풀리기'에 대해 정면 승부에 나설 태세를 보임으로써 두 주자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나라당 내부에는 대선 후보 선출과 관련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은 물론,도덕·윤리적인 문제, 개인 신상 문제 등 엄격한 기준의 후보 검증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다. 지난 대선의 '김대업 악몽'을 감안, 후보의 어떠한 흠결도 용납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 웃고는 있지만…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 13일 오후 강원도 춘천 베어스타운호텔에서 열린 2007 한나라당 강원도당 신년인사회에 참석, 악수를 하고 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후보 검증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검증을 명분으로 '제살깎기'로 맞붙을 경우 집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선 판도를 뒤흔드는 '뇌관'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박 전 대표와 이 전 시장의 지지자들이 벌써부터 인터넷에서 격돌을 벌이는 현실은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검증 공세에 먼저 불을 지핀 사람은 박 전 대표다.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후보가 당의 이념과 정책, 노선과 정체성에 맞는지 당에서 당연히 검증해야 한다"며 '검증'을 쟁점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했다. 측근인 유승민 의원이 전날(지난 14일) "당내에서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할 일은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발언한 다음날이었다. 평소 정치 스타일상 참모의 이같은 발언에 자제령을 내렸을 그녀가 "당의 정체성 문제를 검증하겠다"고 한발 더 나간 검증 의지를 피력해 향후 전개될 검증 공세의 수위를 가늠케 했다.

문제는 당내 분위기가 박 전 대표측의 검증론을 '정책검증' 보다 후보 개인의 소문과 신상 문제를 따져보겠다는 의지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많다는데 있다.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시장과 폭넓은 지지기반을 보유한 박전대표 두 후보의 경쟁이 네거티브전으로 전락할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당내 경선은 물론 대선 본선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확산될 분위기다.

도대체 후보들의 신상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두 주자 중 정책 공약이 아닌 음해성 루머에 상대적으로 많이 시달리고 있는 측은 당연히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시장이다. 시중에는 그에 대한 50가지 의혹을 담은 '이명박 X-파일'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그중 지금까지 드러난 쟁점은 대개 10개 안팎으로, 이 전 시장 본인의 군 면제 의혹이 최대 논란거리 중 하나다. 이 전 시장측은 병무청 병적기록부까지 제시하며 "1963년 8월 자원 입대했으나 훈련소내 신체검사와 잇단 재검사에서 질병(기관지확장증)이 발견돼 면제판정을 받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 전 시장 아들의 군 문제도 단골 메뉴다. 일부 악의적 네티즌들이 '이 전 시장의 두 아들이 모두 병역을 기피했다'는 설을 퍼뜨리고 있으나 이 전 시장 측은 "아들은 하나며, 그 외아들은 멀쩡하게 군대를 갔다왔다"고 수차례 밝혀왔다.

최근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출생지 문제. 이 전 시장의 출생지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경북 포항이 아니라 일본 오사카(大阪)라는 것이 요지로, 이 전 시장측은 "자서전인 '신화는 없다' 등을 통해 출생지가 오사카임을 수차례 밝힌 만큼 문제가 없다"는 분위기다.

현대건설 최고 경영자 출신이라는 점때문에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해서도 막연한 의혹이 난무하고 있고, 서울시장과 국회의원 후보에 공천되면서 야기된 확인되지 않은 갖가지 소문들도 무성한 상태다.

이밖에 "숨겨놓은 여자와 자식이 있다", "서울시장 재직시 각종 이권에 연루된 의혹이 있다", "서민의 애환을 모르고 성격이 독선적이다", "불리해지면 탈당할 것이다", "건강보험료를 축소 납부했다"는 등의 루머에 대해선 이 전 시장 측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고 있다.

박 전 대표도 이런 네거티브전의 피해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성이 국가를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내용은 물론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건립한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 지분 문제 등이 그 핵심이다. 최근에는 그의 출생지 문제도 번졌으며 개인 사생활에 대한 루머도 판을 치고 있다.

정수장학회 문제의 경우 지난 2005년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직접적 관계는 없어졌지만 그동안 여권에서 정수장학회 설립 과정을 둘러싸고 '강탈' 등 온갖 의혹을 제기해 온 만큼 검증 과정에서 이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79년 청와대에서 나와 97년 한나라당 고문으로 정계에 진출하기 전까지 베일에 가려진 사생활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대선 후보라면 사생활이 어느 정도 투명하게 공개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 전 대표의 출생지가 광주라는 소문이 새롭게 떠오르는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이 건립한 영남대 지분 문제와 부친의 스위스 은행 계좌 개설 소문 등 사실 확인이 어려운 갖가지 의혹들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유포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측은 "그런 문제는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거론된 문제로 당 대표 시절에 이미 충분히 검증을 거쳤으며 문제될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경쟁이 뜨거워질수록 이같은 '네거티브전'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설 연휴 여론조사를 앞두고 이 전 시장과 지지율 격차를 줄여야하는 박 전 대표측의 절박함을 고려할 때 검증 논란이 조기에 수그러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